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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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곽재식 지음
대사관 직원 이유선은 체포된 남명식 이라는 남자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남명식은 대학 시절 금융공학 수업에서 첫 눈에 반한 여학생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과거 암시장에서 구했던 ‘봉이비결’ 이라는 제목의 고서 내용을 떠올리며 기말과제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노력 끝에 그 여학생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얕은 만남에서 그쳤고,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남명식은 가슴 한켠 추억 속에 그녀를 묻어둔 채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간다. 사내에서의 반복적인 일상과 상사의 지시로부터 빈번히 부당함을 느껴왔던 그는 ‘봉이비결’에 등장하는 ‘언제나 노름에서 이겨서 돈을 버는 비법’을 체득하고 몇 번의 훈련 끝에 룰렛의 숫자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날로 남명식은 회사를 그만두고 전세계의 카지노를 유랑하며 자신의 심박수로 시간 초를 측정한 다음 몇 번의 암산으로 룰렛의 숫자를 성공적으로 예측하는 기술을 연마하여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미 도박계에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도박사’로 유명세를 암암리에 떨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그를 탈세혐의 용의자로 추적하고 있었다. 오랜 도피 끝에 그는 전재산을 걸고 몬테카를로에서 일생일대의 마지막 도박을 감행하게 되고, 잭팟을 터뜨리려는 순간 갑자기 등장한 오래 전 추억 속 그녀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며 운명의 재회를 한다. 그 순간 그는 날뛰는 심박수를 제어할 수 없었고, 구슬은 처음으로 그의 예측을 멀리 빗나갔다.
남명식의 이야기는 인간의 일생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 첫눈에 반한 여학생에게 구애하며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함에 따라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고자 하는 면모를 보여주지만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의 결론은 언제나 불확실함을 보여준다. 남명식은 또 사회에서 부조리함을 경험하면서 더 나은 삶과 확실한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도박기술을 연마해 나간다. 그러나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그는 늘 또다른 종류의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이는 인간이 현실을 회피하여 택한 삶일지라도 항상 안정과 행복이 보장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몬테카를로에서의 일생일대의 도박 중 재회하게 된 그녀로부터 그는 평정심을 잃고 게임에 패배하게 된다. 비록 그는 전재산을 잃게 되었지만, 체포를 면하게 되었고 후일 그녀와 어떤 관계를 이어나갔을지는 열린 결말로 남아있다. 이 장면은 인간이 매번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행동하려 해도, 감정과 운명이라는 요소가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쩌면 더 이상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잘 보여준다.
워낙 내용의 흡입력이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몰입해 단숨에 읽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거나 다수의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고 전달하려는 스토리가 간결해서 좋았다. 다만, 남명식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묘사를 나타내는 표현이 과하다 싶을 만큼 세밀하고 길게 서술되어 있어 초반에는 이런 묘사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작가만의 개성이 잘 묻어나는 독특한 문체와 전개스타일에 곧 매료되어 텍스트만 읽어도 머릿속에 그림이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잘 그려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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