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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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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095회 작성일 24-09-14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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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와 20세기 초 러시아는 그야말로 예술의 황금기라 평가받을 정도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수많은 걸작이 쏟아져나왔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있던 문학 분야에서부터 미술 분야까지. 음악 분야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는데,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와 [봄의 제전]을 제작한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수많은 걸작을 만든 인물들이 동시대에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러시아 걸작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말할 것이다.  


 20세기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약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고,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차이콥스키를 비롯한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승승장구만 하던 그가 1897년 그의 첫 교향곡 1번을 청중들에게 발표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평론가들의 수많은 혹평뿐이었다고 한다. "음악이 아니라 지옥을 묘사하려는 의도처럼 들린다". 더욱이 남들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였기에, 난생처음 혹평 세례를 받게 된 그는 자신감을 잃고 창작의 위기를 겪게 된다. 교향곡 1번의 실패 이후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몇 년 동안 아무런 작곡 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심리치료를 받으며 삶에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그의 상담을 맡은 심리치료사 니콜라이 달 박사는 연주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 그의 심리상태를 더욱 공감하였다고 한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로부터 최면치료와 긍정적인 암시(positive suggestion)를 받으며 자신이 다시 작곡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1901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 스타일의 그는 그간의 경험을 곡에 녹여내 강렬한 감정과 깊은 서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음악계에 복귀하게 된다. 


 이 협주곡의 성공은 라흐마니노프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몇 년 후 그는 또 한 번 대작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슬럼프를 겪으며 느낀 절망과 우울, 이를 극복하고 다시 작곡가로서 활동하기까지의 희로애락, 그리고 그의 이상향을 담아내는 표현들은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더욱 깊고 성숙하게 드러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된다. 


 1악장은 서정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조용하고 간결한 주제들이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며, 마치 대화하듯이 천천히 전개된다. 다만, 살짝 암울함이 묻어나오기도 하는 부분이다.


 2악장은 1악장보다 더욱 느리고 감성적인 악장으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이 극대화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악장은 마치 노래하듯 흐르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중심이 되며, 명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1악장과 2악장에서 계속 이어져 오던 정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는 2악장 말미부터 갑자기 뒤집어지기 시작한다.


 3악장은 피아노의 화려한 연타 테크닉으로 시작해 거의 모든 구간이 힘차게 진행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살인적인 테크닉과 화성 구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우리의 긴장을 고조시키지만, 긴장감은 계속해서 해소되지 않고 도대체 이 조성 흐름이 언제 마무리 되냐는 듯 현악과 피아노, 그리고 호른이 서로 엉겨가며 끝도 없이 고조된다. 그렇게 끝없이 얽혀있던 선율들이 서로 같은 음을 연주하는 순간 그제서야 40분 짜리 곡의 클라이맥스가 나오게 된다. 1악장에서 d minor로 시작하며 음울함을 표현했던 이 곡은, 어느새 3악장에서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린 것 같은 순수한 환희를 노래하며, D major로 화려하게 곡을 끝맺는다.


 대학생 학부 시절 피아노 동아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피아노 곡들을 많이 접하였고, 그 과정에서 라흐마니노프도 알게 되었다. 리스트(listz)보다는 파워풀하지만 프로코피에프(prokofiev) 보다는 듣기 편안한 그의 곡들은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그 후 그의 많은 곡을 접했던 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연습곡 중 하나를 가지고 연주회를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면, 꼭 재밌었던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연습곡 자체는 재미있었으나, 무엇보다 그가 살아생전 190cm의 거구였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운지법이 매우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그 당시 나의 목적도 완곡이 목표였지 곡의 해석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내 손으로는 한계가 있어 한 사람이 칠 곡을 두 사람이 나눠 연주하며 완곡하였지만, 연주회가 끝난 후에는 이 곡을 더 이상 된다는 사실에 후련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이후로 클래식에 대한 흥미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한동안 기피했던 클래식이 요즘 다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요즘에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듣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제일 많이 듣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매번 두 가지에 감탄하게 된다. 먼저 어떻게 이 거대한 곡을 작곡할 수 있었는지 놀라게 되고, 또한 이 과정에서도 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냐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과 경험을 발판삼아 자신의 곡을 더욱더 애절하고, 풍부하게 만들며 작품성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린 그의 능력은, 협주곡을 들었을 때 놀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좀 더 나아가서는 그의 전화위복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럼 오늘도 이 곡을 들으며 힘차게 나아가보려고 한다. 그가 이 곡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결국 우리 모두 환희의 축배를 들자는 이상향이 내 가슴속에서도 불타오를 수 있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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