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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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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1,997회 작성일 24-06-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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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종종 나를 지탱 해주기도 한다. 이번 달의 책 역시, 비록 들여다보는 동안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의문점을 자아내며 계속 읽기에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책장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나의 발목을 붙잡던 문제로부터 한 걸음 걸어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집합이고, 한순간의 선택일지라도 그 어떠한 선택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선택이 나에게 최고의 결과로 선사 되기를 기대하기에 나의 올곧은 신념을 지조있게 지킬 것인지, 또는 나의 신념을 뒤로한 채 다가올 이익을 추구할지, 두 기로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우리는 바둑판 위의 흑과 백의 돌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까?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화자 (안진진) 의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지만,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편의 가정 폭력에 설상가상으로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안진진의 어머니와 달리, 고상하고 유복한 삶을 살아온 이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폭력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언니가 오히려 부럽다는 말을 남기면서. 불행한 일 투성이지만 행복한 어머니를 부러워 한, 행복한 일 뿐이지만 불행했던 이모. 책 밖에서 들여다보기에는 한없이 비참한 안진진의 어머니와 그에 반해 자식 농사까지 성공한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안진진의 이모로 비추어져서일까? 혹은 행복한 인생일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에 침잠 되어서 그랬을까? 삶의 주체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과 불행의 기준에 함부로 입을 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선택이 모순적이라며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모순적이였던 것이, 나의 한 신념과 그녀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음에 불편함 감정을 느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나의 신념 (타인의 선택에 훈수 두지 않는다) 을 수정했다. 하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신념을 바꾸는 행위. 정말 이보다 더 모순적인 행동은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인간은 타협을 하는 존재이기에 모순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우리가 하는 선택의 그 끝은 종종 신념을 바꾸는 행동을 유발하는 모순이기에, 모순은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 없는 결혼 생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모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아닌 현실의 안정을 선택하여 결혼하는 안진진을 보면 그러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닌 이모와 비슷한 길을 걷기로 결정할 때, 안진진이 읊조린 것처럼 신념을 저버리는 선택이라는 이유로 주저하고 따지기만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발전을 방해하는 결과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모순은 모든 운동과 생명력의 근원이라는 헤겔의 조언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수동적으로 행동하여 절망적일 필요가 없을 뿐더러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그 모순을 받아들여 우리의 삶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가 하는 연구 역시 그러하다. 여느 기록을 참고하여 실험에 반영/선택을 하였을 때, 당연히 재현이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우리는 그 결과와 상응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혹은 오히려 운이 좋은(?) 결과를, 목표로 하던 성과는 아닌 그에 못 미치는 성과, 얻기도 한다. 모순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을 하면서 마주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모순, 이처럼 실험은 피할 수 없는 모순을 맞이하는 날이 허다하기에 오늘의 결과에 하릴없이 있기보다는 다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끊길 것 같은 얕은 시냇물이 어떻게 든 바다에 도달하는 것처럼, 그 모순이 결국 우리의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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