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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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구실에 들어와 대전에 내려오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어디서 살 것인지'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대학에 다닐 때도 혼자 자취를 하기는 했지만, 차를 타고 15분이면 본가에 갈 수 있었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서 내가 살 곳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전에 내려오기 전에 자취하고 있던 방이 학교와 3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거리에 꽤 만족을 하며 다녔던 터라 이번에도 동일한 거리 내외에서 방을 구했었다.
그 후 연구실에 출근해보니 나보다 멀리 자취하는 사람이 없다.
아직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도 딱히 이사를 할 계획은 없는데, 출퇴근의 불편함(사실 나는 안 불편하다)을 감수하고 왜 그렇게 멀리 사는지 물어보면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좋다는 것 외에는 딱히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다. 어떤 게 좋은 건지 물어봐도 딱히 큰 이유는 없다.
그러다 이번에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을 읽었다. 나는 비 전공자이지만 건축과 관련된 내용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공간에는 삶이 담기기 때문에 각각의 건축물들에는 공간을 설계한 사람들의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건축 규제에 따라, 건물의 의도에 따라, 그리고 미적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가의 의도들이 비 전공자 입장에서 바라보아도 흥미롭게 읽힌다. 물론 깊은 지식은 없기 때문에 그저 흥미로 소비해왔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단순한 흥미로 고른 책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알랭 드 보통 또한 건축가가 아닌 비 전공자로, 건축가가 아닌 사람이 개인의 경험에 더불어 건축이 어떻게 사람의 행복에 관여하는지 작성한 책이었다.
덕분에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불명확한 이유를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건축이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것은 미학적으로 좋다는 뜻 이상이다. 그것은 이 구조물이 지붕, 문 손잡이, 창틀, 층계, 가구를 통해서 장려하고자 하는 특정한 생활방식의 매력을 내포한다. 아름답다는 느낌은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에야 얻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디자인과 건축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내부나 주변과 가장 어울리는 생활이다. 우리를 따듯하게 해주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라고 권유를 한다. 행복의 전망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간에는 삶이 담긴다. 집, 회사, 연구실, 사용하는 자리, 자주 다니는 길목까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동일한 장소가 주어지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우리의 취향이 반영된 장소에 기억이 남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통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유추해보기도 하고, 특정 장소에서 쉽게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처럼 건축은 우리에게 여러 가치들을 기억해내게 하고, 그것을 증폭 시키며,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작은 요소들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며 그 장소를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꼭 우리가 영구히 거주하거나 우리 옷을 보관해주어야만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건물과 관련하여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내적인 노래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일 뿐이다. 집은 공항이나 도서관일 수도 있고, 정원이나 도로변 식당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 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중요하면서도 쉽게 사라지는 측면들이 살아있도록 유지해줄 방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애정이 가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내가 기대하는 집에 대한 전망과 부합하고,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대전에 내려왔을 때의 설렘이 담긴 가구 배치와, 출퇴근을 하며 지나는 길들과 집주인 할아버지와 집 앞 세탁방 사장님의 친절함.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서점과 도심의 생기가 주는 활기들, 종종 갑천변을 걸어서 퇴근할 때 느끼는 한적함과, 주말 작은 방 책상에 앉아 창문을 열고 공부할 때 들리는 윗집 아기의 조잘거림과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이미 젖어들어 버렸다. 물론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학교를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방을 구했다면, 그리고 그 곳의 인상이 좋았다면 아마 그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좋은 집이라고 느꼈을 것 같지만, 지금에 와서 집을 옮길 이유를 찾자면 '가깝다'라는 기능적인 이유 뿐이라 아직은 지금의 공간에 조금 더 집이라는 의미부여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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