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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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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1,897회 작성일 24-07-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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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비극성과 시적 아름다움은 종종 셰익스피어의 비극, 특히 『리어왕』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오해를 받고 저평가되었다. 심지어 그녀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조차도 1850년에 출간된 소설의 서문에서 이 작품을 "어설픈 작업장에서 단순한 도구로 평범한 재료를 가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어둡고 사악한 내용으로 인해 세상의 비난을 받았다. 겨우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많은 시인과 문학가들에 의해 그 진가가 인정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현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 아마도 너무 깊이 있고 어두운 내용의 작품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요크셔의 한 농장에서 언쇼라는 이름의 주인이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고아인 소년을 데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소년에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의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과 함께 키우기 시작한다. 힌들리는 처음부터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고 괴롭히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자란다. 언쇼가 사망하자 힌들리의 학대는 더욱 심해지고, 이로 인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유대는 더욱 강해진다. 힌들리는 결혼하여 헤어튼이라는 아들을 낳지만, 그의 학대는 가족에게도 이어진다.

어느 날 캐서린은 부유한 린턴 가문의 초대를 받게 되고, 힌들리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는 린턴 가문의 아들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히스클리프는 이 소식을 듣고 말없이 사라진다. 캐서린은 그를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에드거와 결혼한다.

 

 

 몇 년 후, 히스클리프는 부유한 신사가 되어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그는 여전히 캐서린을 사랑하지만, 힌들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를 도박으로 몰아 전 재산을 빼앗고, 그의 아들 헤어튼을 하인으로 삼아 학대한다. 또한 에드거의 누이 이사벨라를 유혹해 결혼함으로써 에드거에게 고통을 준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 때문에 괴로워하다 딸을 낳고 죽는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사벨라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 린턴을 낳고, 린턴이 12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난다. 힌들리도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다. 히스클리프는 린턴과 캐서린의 딸을 강제로 결혼시키지만, 린턴은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에드거마저 세상을 떠나자, 히스클리프도 캐서린의 환영을 쫓으며 죽어간다. 결국 언쇼 가문과 린턴 가문에는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과 캐서린만 남는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3대에 걸친 폭풍의 언덕에서 벌어진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그때는 이게 왜 유명한 책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되어 다시 한 번 읽어봤는데, 내가 여태 보았던 어떤 드라마 또는 소설에서도 히스클리프와 같이 처절하고 미친 듯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마적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 작품은 사랑이 얼마만큼 복잡할 수 있는지 또한 사랑이 어떻게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린턴에 내 사랑은 숲 속의 잎사귀들 같아. 겨울이 나무의 모습을 바꾸듯 시간이 내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세상엔 사랑 외에도 성취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히스클리프에게 끊임없이 매료된다. 사랑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내가 시작한 일을 내 손으로 완성하고, 매 순간 열정으로 가득 차 재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나도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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