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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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 마거릿 렌클 -
마거릿 렌클의 에세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서 겪는 상실을 주제로 한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삶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짧으면 1페이지, 길면 20페이지 내외로 각각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이어진 챕터들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개인적인 삶의 고찰과 이로부터 느끼는 기쁨, 상실감 등을 써내려가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책의 초반부는 주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미국 남부 지방 대가족 출신인 그녀는 수많은 친척과 함께 성장해 왔고, 그로부터 생긴 가족사와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읽는 나로 하여금 소소한 재미를 주고 있다. 어린 시절의 재미있던 기억들, 언니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계속해달라며 조르는 일화나, 작가가 자고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온 가족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우주 속 태양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경험 등등. 하지만, 책의 중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나이를 먹으며 삶에서의 상실감을 느낀 일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며 느꼈던 상실감과, 그로부터 느꼈던 감정들. 혹은, 작가가 아이를 낳은 이후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느겼던 감정들. 하지만 이러한 상실감 뒤 그로 인한 성장과 가치관의 변화를 잘 보여주며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평소 공연에 관심이 없던 작가의 아버지가 지병을 앓고 쇠약해진 이후 어느 날부터 가족들 다같이 서커스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한다. 저자는 평소 관심도 없어하던 서커스를 왜 보러 가자고 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자신의 지역으로 서커스 공연이 오게 될 몇 년 후에 보러 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고, 서커스 공연은 작가의 가족들끼리만 보러 가게 된다. 이후 아이들이 서커스에 대한 긴 여운을 갖는 것을 보고 작가는 작가의 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아픈 모습만 보여주는 것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깨닫게 된다.
책 후반부에는 마거릿 렌클이 목격한 자연의 천태만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내용이 너무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 두 테마는 상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어진다. 작가 집 근처에 서식하는 집굴뚝새는 자기 영역에 들어온 작은 새들을 죽이고, 어치는 다른 새들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작가가 관찰한 미국 남부의 울창한 자연은 아름다울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정원에서 박새를 죽인 집굴뚝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귀여운 몸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가진 집굴뚝새의 난폭한 본능은 오랜 시간 동안 작은 몸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특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아름답고도 무심한 야생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삶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
세월이 흐르며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작가에게 죽음은 아름답게 찾아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어른들과 멋진 추억을 함께했던 기억들은 늙고 병든 몸을 가진 오늘 앞에서 쉽게 휘발해 버린다. 작가는 자신과 남편을 키워줬던 어른들을 돌볼 때마다 정신적으로 지쳤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바로 정원에 찾아오는 온갖 생물이었다. 지금껏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기쁨이나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지니지 않은, 오직 지금만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작은 동물들. 지금 태어나는 삶도, 저물어 가는 삶도 모두 각각의 기적적인 ‘지금’들을 갖고 있다. 치열하게 먹고 먹히면서도 꿋꿋이 번성을 꾀하는 자연 속 탄생과 죽음은 공평하게 존중받는다.
'대체할 수 없는 생명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방 창밖에서 축하를 받으며 확 타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사내아이야.” 누군가 양팔을 뻗으며 외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 감사합니다.” ‘
슬픔에 잠겨있는 자신과 달리 창밖의 세상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불행을 던져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면서 계속 순환하고 있다. 이후 작가가 겪었던 개인적인 비극들은 자신이 깨닫게 된 자연의 섭리라는 커다란 집합 속 하나의 부분집합으로 이루어져 서술되고 있었고, 이를 통해 작가는 개인적인 삶의 상실을 애도하는 동시에 자연의 맥락 속에서 이를 관조하고 있었다.
"Every time we say Goodbye I die a little.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가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 문장은 사실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라고 하는 가수의 노래이다. 작가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곤 했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신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작별한 이후 가사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매우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작별 인사의 순간마다 느껴지는 상실의 감정. 많은 것을 간직하고, 많은 것을 기억하고, 많은 추억이 쌓였어도 돌아가신 분의 빈자리는 채워질 수 없기에 무뎌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로 인한 공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얼마 전 내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건강하고 열심히 살고 있던 친구의 갑작스런 비보에 나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 친구가 나타나 나를 살갑게 맞이해줄 것 같은데, 그 친구와 했던 농담이나 장난들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장례식장에서 추모하는 그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는 애써 적적함을 잊으려 농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같이 친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수록 그 공허함은 커져 갈 것 같다.
사고 소식을 접한 이후로, 나는 삶의 무상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언제 떠나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마거릿 렌클은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처음인 나한테는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친구가 떠나며 남긴 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겠지만, 그가 내 삶에 조금이나마 남긴 흔적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떠나간 이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가며 이들을 기릴 수 있다면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를 좀 더 편안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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