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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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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1,983회 작성일 24-07-14 23:40

본문

“노벨상 타려고 연구하나? 인류 지식 경계를 넓히려고 연구하는 거지.”


신소재공학과 학부 재학 시절, 고분자공학 수업에서 김상욱 교수님께서 지나가듯이 하셨던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브라이언 키팅이라는 물리학자로, 한 때 노벨상에 근접한 학자 중 한 명이었다. 몇 해 전 그가 고안한 핵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추진한 연구 사업이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러 복잡한 이유로 결국 수상자의 영예를 안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노벨상의 모순, 그리고 노벨상이 현 과학계에 야기하는 부작용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는 “Losing the Nobel Prize” 라는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그가 난데없이 이러한 노벨상 수상자의 인터뷰를 엮은 책을 내게 된 것은, 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물리학자를 인터뷰한 책이되, 물리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들어있지 않다. 방정식 등의 수식은 일절 없다. 다만 학자들이 다년간에 걸쳐 쌓은 지혜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농축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저자가 하필 물리학자에게서 이런 지혜를 배우는 까닭으로 2가지를 들었는데, 물리학자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불확실성에 선 상황이 삶의 조건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 첫 번째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9명의 물리학자들은 모두 ‘소통’이라는 탁월한 사회적 기술을 지녔기 때문이 2번째라고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물리학자가 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물으면,
학생들은 대개 수학 능력이나 실험 기술이라고 말한다.
둘 다 틀렸다. 의사소통 능력과 정서 지능이야말로 이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지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도구다.”
–
본문 中


사실 ‘소통’의 중요성은 물리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과학이든, 공학이든, 인문학이든,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필연적으로 소통 문제를 겪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통과 의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박사과정 중의 3년을 Monolithic 3D 플랫폼 구축 사업에 바치면서 얻은 가장 귀중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나노팹 엔지니어 분들과 협업하고, 갈등을 조율하면서 업무를 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경험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라인은 metal particle 오염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형화된 프로토콜이 있어서, 대부분의 장비 담당 엔지니어들은 그 프로토콜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노종합기술원의 존재 의의는 경직된 분위기를 넘어서 학계의 인프라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고가의 장비나 실험 인프라를 구축하여 산-학-연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데에 있다. 안되면,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수밖에. 그런 일련의 과정을 몇 년을 거치다보니, 협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 반도체 분야에 발을 들인 이상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주쳐야 할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은 이해한 기분이었다.


노벨상을 받았을 때 난 그게 내가 천재란 뜻도, 위대한 물리학자의 순위에 들었다는 뜻도 아니란 걸 직감했어요. 
그건 대체로 딱 맞는 시간에 딱 맞는 장송에 있었기에 그 발견에 기여한 운 좋은 사람이 받는 상입니다.
– 애덤 리스,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가면 증후군,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업무에서 달성한 성과와 관련해서 자신을 의심하는 증상을 말한다.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극단적으로는 자신을 사기꾼으로 느낄 수도 있으며, 자신이 매우 유능하다고 생각하도록 동료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기도 한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가 스스로 오랫동안 고뇌하고 있었으며, 나 역시 그러하다. (차이가 있다면 부끄럽게도 나는 달성한 성과가 뚜렷하게 없다는 점일까.) 책에서 소개된 애덤 리스의 인터뷰는 그 중에서도 크게 와닿은 부분이다. 어떤 연구자들이든, 모두가 작은 영역에서, 나만의 독특한 좁은 영역을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노벨상을 비롯한 어떤 큰 영예는 원래 운에 기대는 것이라면, 기만자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면, “자신의 성취나 실패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균형감”이 오히려 목표를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불특정 청중을 위한 교양서이지만, 연구를 하는 햇병아리 대학원생들이 한 번쯤은 꼭 보아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천 번, 만 번을 흔들릴 그들이 길을 해매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이정표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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