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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바바라 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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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1,868회 작성일 24-08-08 10:57

본문

1.     

"테오야, 이곳 풍광에 난 완전히 매료됐어. 당장 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일에 매달리고 있어. 그래서 부탁인데, 물감을 당장 좀 보내줘. 올해는 일에 있어 상당한 진척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그래야만 하지만..."

반 고흐의 열정 어린 편지 속 문장이다. 

그러나 생전 고흐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반 고흐는 색의 명도나 색조의 정확성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연구에는 괜찮을 법한 모티브이지만, 회화의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평이었다.

고흐는 생전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서양 미술계에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 그가 화상에게 판매한 유일한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하나뿐이었다.

고흐의 예술 세계가 점차 자리 잡아가는 동시에 그의 정신이 무너져가기 시작하는 시기, 그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를로 이사한다. 

유일한 후원자이자 혈육인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논밭이 보이는 작은 집에 세를 들어 살며, 매일 아침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나가 새로운 색채로 풍경을 표현했다. 

집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라 크로'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프랑스의 밀밭을 그리며, 무한함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2.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고흐의 편집증과 조울증은 아를에서 점점 심해졌다.

 절친했던 고갱과의 다툼 이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때로는 옷을 벗고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는 나이프로 자신의 귀 일부를 잘라내는 사건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는 담쟁이덩굴과 올리브밭 풍경을 그렸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치료가 아닌,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을지도 모른다.


"테오야, 너는 이해할 테지. 산란한 정신으로 며칠을 지냈는지도 몰라. 아를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 필히 죽을 미약한 존재들이자 온갖 질고에 시달릴 숙명을 타고났으니, 

나 또한 내 몫을 할당받는 것이 외려 공평한 일일 테지."

3. 

정신병원을 떠난 고흐는 테오에게로 간다. 테오는 고흐의 그림 350점을 모아 자신의 파리 아파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전시는 호평으로 마무리된다. 

그토록 원했던 인정을 마침내 받게 되었지만, 이미 그의 정신 건강은 매우 악화된 상태였다.

 결국 고흐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우리가 현재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대작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그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과정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평생 불행하게 산 고흐는 마지막에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고흐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였다.


마음이 많이 복잡해지는 시기가 나에게도 온 듯 하다.

눈을 감으며 생각해본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추구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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