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행복의 기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086회 작성일 24-06-08 22:41

본문

<행복의 기원>

- 서은국  著 - 


 나이가 들며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단순히 공부만 하던 시절을 벗어나니, 내 행동과 선택 하나하나에 점점 책임을 갖게 되며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숙한 부분이 많은 터라, 예상치 못한 일에 마주했을 때는 당황하고 우울해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작년 이맘때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여러 개인적인 사건들이 많이 겹쳐 힘들어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하소연하고,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는 심지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것도 찾아보며 다운되었던 기분을 탈출하고자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그것이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가 매주 주일에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기독교의 교리를 생각하고 있다보면, 오히려 잡 생각들을 버리며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힘든 시기를 이겨냈고, 그때의 시절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은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예스24 홈페이지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작년에 내가 '행복'의 정의를 찾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되게 묘했고, 이를 지나칠 수 없었다.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가 쓴 이 책은, 지금껏 철학적으로만 논의됐던 모호하고 추상적인 ‘행복’에 대한 오해를 벗겨 내고 진화론을 통해 현실적인 행복의 정체를 밝혀내면서, 행복이 사실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눈앞에 있는 단순한 것이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행복의 기원은 이 생물학적 행복을 통해 “왜 원하는 바를 이루고 가지고 싶은 걸 가져도 행복해지지 않을까”와 같이 추상적인 행복의 개념으로는 대답이 어려웠던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한 것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을 가지면서 살아오곤 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생각은 누가 처음 시작한 생각이었을까?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철학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과는 마땅히 땅에 속하는 것이기에 사과 자신에게 내재된 목적인 땅을 향해 ‘떨어진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속에서는 사람의 인생에도 목적이 있다. 그는 행복이 곧 인생 모든 곳의 종착지이자 ‘행복’이 곧 최고의 선(善)이라고 주장한다. 최고의 선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중간단계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될 궁극적인 무언가여야만 했고, 행복이 그 궁극적인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면 자연이 숨기고 있는 그 근본적인 존재의 목적을 발견해 낼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그저 느낌에 불과했을 분, 그 어떤 견고한 근거는 없다. 검증 가능한 과학의 영역보다는 개인적인 견해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그러므로 행복을 궁극의 선으로 올려놓은 바로 그 논리의 토대가 되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사실이나 진리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한 이상, 행복이란 의미는 아직도 모호하게 남아있게 된다.


 이에 반해 과학적 사고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사과가 잘 익어서 땅에 떨어지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온 우주 속에서 도무지 목적과 의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학은 목적으로서의 행복이 자리하고 있던 이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넣었을까?


 과학적 사고의 대표적 이론인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은, 한동안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분명히 생존에 크나큰 약점이 되었을 공작새의 크고 화려한 깃털이 이 혹독한 세계를 견뎌낸 것이었을지 말이다. 만약 공작이 보호색을 띄며 진화했다면 최고의 안전을 보장받았겠지만, 암컷의 눈에는 매력이 없기에 그 대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어만 살다가 멸종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언뜻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은 포식자로부터 좀 더 눈에 띄는 대신 암컷 공작새의 관심을 끌고 자손을 남기는 데에 더 유리했기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우주에는 이유가 없지만 살아남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 또한 생존과정에서 나오게 된 결과물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을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생물학적으로 본 그 뒷이야기는 ’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보다 연애가 보상으로 주어질 때, 창의력과 재치 점수에서 더욱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피카소 효과’라고 부른다. 만약 우리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것이라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어떤 도구였기 때문에 지금껏 남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빠르게 사그라지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해질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 당첨자들의 행복도는 1년이 채 가기도 전에 없어지고, 보통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행복이 궁극적 목표이자 산물이라면, 왜 그토록 덧없이 사라지는 것일까?


 수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평원을 거닐다가 살이 무척 오른 손쉬운 사냥감을 발견했다면 분명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그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사냥감 그 자체였을 것이다. 행복감은 목표가 아니라 우리를 목표로 유도하는 ‘신호음’의 역할을 한다. 대체로 행복과 같은 긍적적인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저자는, 행복은 땅속에 묻혀 있는 금화가 아니라 그 금화를 찾는 금속탐지기에서 내는 ‘신호’라고 말한다. 금속탐지기를 들고 다닐 때 신호가 아예 울리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유 없이 같은 강도로 계속해서 울리거나, 동전이 없는 곳에서 울려대도 문제가 생긴다. 이런 비유는, 단순히 크고 많고 영원한 행복은 오히려 생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행복 신호를 발생시키는 확실한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에 따르면 환경이나 재물과 같은 외부 요소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설명하는데 아주 작은 부분만 기여한다고 한다. 오히려 행복과 매우 연관되어 있는 것은 성격과 유전자라고 한다. 다만, 성격과 유전자가 좋지 않은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외향성’이라는 성격적 특징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우연히 ‘외향인’이 유달리 더 행복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물들을 연구한 후속 연구에서도 동물들조차 외향적일수록 행복했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결핍이나 고통을 해소하는 것은 긍정적 감정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불행과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고통을 피하는 소극적인 방식 대신, 행복 신호를 울리는 요인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저자는 이때 ‘사람으로부터의 적극적인 보상추구’가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특출난 ‘지능’, ‘창의력’ 등을 꼽는 가설들이 많다. 하지만 그 높은 지능이 어떻게 발달하기 시작했을까? 최근의 한 가설은 그 고도로 발달된 지능은 호모 사피엔스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달했다고 본다. 인간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강하고 빠른 신체보다는 협력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다른 동물들이 해내지 못할 커다란 규모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 요인은 어떻게 보면, 똑똑함이 아닌 ‘극도의 사회성’인 것이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 ‘타인’의 존재는 행복 신호음이 가장 빈번하고 강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금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요인은 외로움, 즉 사회적 고립이라고 한다. 현대인은 더이상 맹수나 자연재해로부터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지만, 뇌는 여전히 사회적 고립을 생존의 위협으로 생각하고, 강렬한 스트레스 신호를 보내게 되면서 건강상의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반대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뇌는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 신호를 보낸다. 즉, 외향인이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향성 자체보다는 그 사람들이 가지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성격과 유전자가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표이자 우리 마음속 추상적 허구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과학으로 본 행복의 기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