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진영 지음-
'입관 전에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대자 음습한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숨이 막혔다. 너무나도 폭력적인 이별 방식이었다.'
'엄마, 내겐 쓰고 읽을 수는 있으나 부를 수는 없는 단어다.'
주인공 범우는 13년 전 번번이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오래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 힘든 시절 범우와 심하게 다투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투신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 범우는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원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간다. 범우의 기억 속 항상 짜증이 많고 우울했던 엄마. 단 한 번도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엄마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장암 판정을 받은 범우는 짐 정리를 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우연히 젊었을 적 엄마의 일기를 읽게 된다. 일기를 읽게 된 범우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엄마는 이제 없다. 그는 오랜 세월 일부러 외면했던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는다. 어머니의 일기를 읽고, 친지를 만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는 꿈과 욕망을 가진 온전한 주체로서의 어머니를 만난다. 범우는 엄마의 일기를 읽다 눈물을 왕창 쏟았다. 엄마 역시 우리가 숱하게 마주했던 작은 아이 중 하나였고 화려한 청춘을 보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다. 마치 우리들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참 직관적인 제목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마음에 와닿았고 책의 내용과 잘 맞는다. 엄마도 나보다 어렸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데 왜 잘 이해하지 못했나 싶다.
‘어머니’는 소설의 주제로 종종 사용되어 왔지만, 보통 사랑과 헌신의 존재일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이 찾아가는 어머니의 옛 흔적에서 발견하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시절’을 간직한 어머니의 삶 그 자체다. 꿈을 품었던 소녀, 욕망을 가졌던 여인, 갈등과 고뇌와 슬픔과 좌절 속에서 삶을 일구어 왔을 한 사람으로서의 ‘어머니’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주인공인 아들(범우)은 어머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신성하다고 느껴졌지만 이 책을 읽고 씁쓸한 뒷맛이 느껴진다. 여행 다니고 싶고 예쁜 옷 입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찬란한 젊은 여성은 없고 가족에 헌신하는 엄마만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 지도 교수님의 대학원생, 등등 ...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주체인 '나'이다. 생물학적인 이유인지, 사회 관념적인 이유인지 유독 '엄마'라는 역할에 더욱 무게감이 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많은 '엄마'들은 그 역할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버린듯한 우리 엄마도 엄마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써의 인생이 더욱 궁금해진다.
어릴 적 방학 숙제로 엄마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직접 묻고 들은 적이 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삼성전자 '삐삐' 양산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스무 살 소녀, 몇 년간 일하며 모은 돈을 오로지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결혼과 혼수로 사용했던 숙녀, 출산으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하였던 엄마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엄마'는 이를 담담히 이야기하였지만 어째 선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받아 적기를 그만두고 침대에서 몰래 울었다. 열몇 살 아들로서 '엄마'가 아닌 열망 가득한 여성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여 낯섬과 당황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우는 것이 부끄러웠던 초등학생 아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방학 숙제를 이어갔고 엄마는 눈물을 모르는 체 해주었다. 온전한 엄마의 주체를 처음으로 인식한 그날, 긴 여운을 남기며 마치 엄마에게 어디론가 한 발짝 다가간 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마주했던 것은 '엄마' 뿐이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부모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이기적이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후회하고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반성하게 된다.
'만남만큼 중요한 게 이별이야. 이별을 소홀히 하지 마.'
"미련 未練" 깨끗이 잊지 못하고 남아있는 마음
과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1년이 지나 입는 상복을 '연(練)복'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련, '연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돌아가신지 1년이 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부모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은 자식의 마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련이라는 말 자체엔 부모님과의 이별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죽을 운명이고 부모님은 우리 곁을 언젠간 떠나야 한다. 이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 결말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할 것이다.
여느 노래 가사에서 이별은 만남보다 쉽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은 끝맺음이 정말 어렵다. 과거의 소중한 인연들의 기억에 시달리는 것, 이미 끝나버렸음에도 여전히 고통받는 것은 제대로 끝을 낸 인연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숨고 도망치며 끝내버린 관계라서 마음속 매듭지어지지 않는 미련이 고통으로 발화되는 것 아닐까.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작자가 겪은 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작자의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였고 작자는 미련에 고통스러워하다 기일 11년 만에 마주한 일기장으로 비로소 어머니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생전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에야 일방적으로 다가감에 작자는 크게 후회한다. 망자에게 울부짖는 것보다 생자에게 속삭이는 게 낫다.
이 책을 우리 엄마가 살아계실 때 읽게 되어 참 행운이다. 오랜만에 엄마와 전화하면서 지난날을 추억하고 진정한 엄마에게 더욱 다가가고 싶다. 먼 훗날 언젠간 마주할 이별의 미련을 한 올 한 올 없애고자 한다.
나는 아들이 처음이고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었던, 서로가 서툴렀던 그 시절. 이제서야 그 평행선이 좁혀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