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요즘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042회 작성일 24-07-09 01:17

본문

“ 요즘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

- 코이케 류노스케 著 「 초역: 부처의 말 」 을 읽고 -


- 어리석은 자가 무언가를 해내면

약간의 일을 해내면 어리석은 자는 곧장

‘나는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하고,

‘존경받고 싶다. 다른 사람을 굽실거리게 하고 싶다. 추켜세워지고 싶다.’며 물욕과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모두가 내가 한 일을 알아봐줬으면. 모두 내 말대로 해줬으면.’

이렇게 유치한 욕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자의 욕망과 오만함은 점차 비대해져 갑니다.

- 법구경 73, 74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그토록 몸과 마음을 다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나의 그 결실은 칭찬과 격려의 햇살을 받기도 전에 맺음과 동시에 포장에 담겨 크기, 빛깔 그리고 맛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금새 큰 혼돈에 휩싸인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결실을 수려하게 치켜세우는 것들에 의한 오만함일까 보잘것없이 내팽개쳐질 것들에 의한 수치심일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기에, 어리석은 자의 욕망과 오만함은 멀리하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비관과 나약함도 멀리해야 한다.

 

논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사고방식에 얽매야 있는 사람이 ‘오직 내 생각이 진리이고, 당신은 틀렸다’며 논쟁을 걸어 온다면,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도 알 것 같다’고 말하고 받아넘기세요.

상대가 싸우려는 마음으로 엉겨 붙어도 ‘자기 생각에 얾개여 당신과 다투는 그 성가신 일을 하려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는 듯 살짝 힘을 빼고 대응하세요.

자기 생각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논쟁에서 오는 고통은 사라집니다.

- 경집 832

 

요즘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라는 말이 참 어렵다. 내뱉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미처 내뱉기도 전에 그다음 나의 생각을 말하려는 이기적인 조급함 때문이다. 늘 한 때를 놓치고 나서야 ‘그때 한 번 그의 생각을 들어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와 반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가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는 곧바로 내가 더 옳다는 말을 하려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심히 공격적으로 말이다. 그가 설령 그만의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더라도, 나는 과연 나에게 얽매여 있지 않고 타인의 말을 받아들임에 있어 자유로운가. 내가 맞았다는 쪽이건 상대가 틀렸다는 쪽이건 하나의 생각에 집착하는 마음은 결국 내면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함께 뜯어져 커다란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비뚤어진 애정이라는 속박

가족이나 연인, 오랜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무심코 그들에게 응성을 부리게 됩니다. ‘날 소중히 여긴다면 이 정도는 해줄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기대지만, 그 무례한 욕심은 대부분 채워지지 않고, 기분만 우울해집니다.

애정으로 인한 집착이 너무 강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지 아닌지 불안해져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 비뚤어진 애정 탓에 우울감이나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비뚤어진 애정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미 당신에게 우울함이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구경 212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수많은 책과 연극,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배신과 비련의 서막을 알리는 문장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무례함이 가득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라며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네가 나한테’라며 일방적인 관계 그리고 ‘그러면 안 된다’며 주제 넘는 통제까지. 결국 애정과 믿음이라는 비뚤어진 속박에 의한 또 다른 괴로움을 낳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있어도, 마음을 충분히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을지라도, 그가 나와 늘 같은 곳을 보며 함께 걸을 것이라는 무조건적 낙관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를 믿지 말고 결국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정에 쉬이 그 매듭을 내어주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본다

당시이 자기 손에 주어진 것을 보지 않고, 타인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는

‘좋다. 갖고 싶다’며 부러워 한다면, 마음의 고요함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법구경 365

 

‘소유’는 항상 양극이 존재하지만, 시소처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감정이다. 내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하게 되고,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어도 곧장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비교하게 된다. 더 커다란 소유를 향한 마음은 하나의 성취를 낳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선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충분한 애정을 갖고 그로부터 욕망으로 휘몰아치던 마음에 고요함을 되찾아야 한다. 풍랑이 가신 물길은 무엇보다 투영(透映)하기에, 쓸 데 없는 노질에 두 손이 허망하지 않을 수 있고 비우지 못한 욕심에 벗어날 수 없는 심해로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독은 상처가 없는 손에 스며들지 못한다

무언가를 만지는 손에 상처가 없다면 독이 묻어도 침투할 수 없기에 그 손으로 태연히 독을다룰 수 있습니다.

상처 없는 자에게 독이 영향을 미칠 수 없듯 마음에 악업이라는 상처가 없는 자에게는 비난도, 중상도, 재난이라는 독조차도 전혀 침투할 수 없습니다.

악업의 에너지를 쌓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 즉 불행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법구경 124

 

살면서 한 번쯤은, 어쩌면 수없이 많은 ‘독’을 만져야 할 순간이 온다. 고통, 불안, 슬픔, 거짓됨, 나태함, 욕망, 충동, 우울, 시기, 질투, 실패, 좌절, 고독, 그리고 죽음까지. 구태여 내가 손을 뻗지 않아도 어느샌가 두 손에 닿고 그 독기를 감내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온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상처만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은 막을 수 있다. 평소 습관적으로 독기를 내뿜던 자의 두 손은, 훗날 다가올 커다란 독이 스며들 만큼 커다란 흉을 가질 수밖에 없다. 평소에 온화함을 품고 살던 자의 두 손은,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은 만큼 더 온건해져 있다. 그러니 악업을 쌓지 말고, 선한 행동, 선한 말 그리고 선한 생각에 의해 마음에 새겨진 긍정이 무르익기를 기다리자. 훗날 그 어떤 독을 만지게 되더라도, 깊은 마음까지는 상처주지 못할 테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