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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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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1,935회 작성일 24-05-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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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 소설은 짧은 자아 성찰과 함께 시작된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으라 말한다. 그리고 소설은 그 방법을 제시한다. 가장 첫 번째 할 일은 내 속에서 나오려는 것, 그것을 인지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규범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만 살았다. 하지만 그는 묘하게 그것을 불편해했다. 자신 속에 존재 하는 '악'에 대해 부정했다. 그것은 밝은 세계에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거짓말을 하고, 크로머에게 돈을 상납하는 행위에 대해 크게 죄책감을 느낀다. 기존에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 그것이 싱클레어의 유년시절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그렇게 오래된, 해묵은 이야기들은 늘 사실이야. 그러나 언제나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지도 않지."


   괴로워하던 싱클레어에게 구원자 데미안이 나타난다. 그는 싱클레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한다. 그는 마치 싱클레어의 이면이 나온 것처럼 싱클레어의 욕망과 생각을 읽고 자극한다. 데미안 덕분에 첫 번째 시련인 크로머에게서 벗어났지만, 데미안은 그에게 더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는 두 번째 방법,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싱클레어에게는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가르쳐 준 것이 무조건적인 진리라고 생각한 그는 처음엔 반박했지만, 이내 자기 속의 본성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본인은 카인이고, 그의 표적을 단 자기에게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반복적인 꿈에서 보이는 무언가를 쫓는다. 그렇게 그는 목표가 생기고, 내면의 폭풍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 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세계 속 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기를 열렬히 갈망'한다. 그렇게 그는 나아갔다. 마지막 단계, 자신의 운명을 행하는 것에 이른 것이다. 그가 비로소 알을 깬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데미안이 사라진 후 싱클레어는 말한다.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이렇듯 데미안과 '나'가 하나로 합치된다. 데미안은 그에게 친구이자 인도자였으며, 결정적으로 본인이 부정했던 진정한 그의 세계였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지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한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 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데미안을 만나지 않았다면? 삶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갇혀있을 수는 없는 법. 소설에서 말하듯, 악의 없는 인간도 살면서 한 번쯤 혹은 몇 번은 경건과 감사라는 아름다운 도덕과 갈등을 겪에 마련이다.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들로부터 갈라놓는 걸음을 떼야 한다. 누구든 고독의 혹독함을 조금은 느껴야 한다. 즉, 언젠가는 본인이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야한다. 


   나에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진학이 모두 그러했다. 항상 익숙한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했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환경과 깨달음을 주었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특히 대학원 과정이 그렇다. 처음엔 모든게 서툴렀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원해 이 곳에 왔는지, 나 스스로를 잊어버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행하는 길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다행히 나에게는 데미안과 같은 여러 인도자가 있었다. 그들 덕분에 고뇌와 방황을 시간을 줄였고, 목표를 찾아 행하고 있다.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나요?"


   지난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몸과 마음이 다쳐 많이 힘들고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기만 했을까? 더 아름답고 쉬운 길이 있었을까? 그건 아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애정은 없다. 더듬거렸을지라도 내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을 사랑하리라. 그것이 내가 내 길을 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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