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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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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139회 작성일 24-05-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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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캐럴 계숙 윤 -

 

 얼마 전, 기숙사 창문을 실수로 장시간 열어 놓아 송화가루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노랗게 된 창문 주변을 발견하고는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치우는 김에 대청소를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이내 정신을 붙잡곤, 방 안을 싹 정리하였다. 책상 위 안 쓰는 물건들은 종류 별로 나누어 서랍에 넣어 놓고, 퇴근한 후 아무렇게나 벗어나 어지럽혀진 장롱 속 옷들은 다 꺼내어 깔끔하게 갠 후 색깔과 형태별로 옷을 분류하였다. 2시간 동안의 청소가 끝난 후 깔끔해진 방을 보면서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던 나에게 문득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청소하며 물건들을 분류하면서도 이렇게 뿌듯함을 느끼는데, 나보다 더 정리하는 것을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의 욕구를 활용해 무엇인가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이 생각을 기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그 중 하나는 바로 생명과학 수업 때 배운 '분류학'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불과 몇백 년 전 과거에는 생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과학자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과정이었다고 한다. 아마추어 분류학자들은 주변에서 채집할 수 있는 각종 동식물들을 집에 박물관처럼 전시하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생물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이 생물이 어떤 분류로 묶여야 하는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영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 출생의 칼 폰 린네는, 정규 학위 과정을 밟지 못했지만, 처음 보는 생물을 한 번에 분류하는 능력을 보여주어 단숨에 세계적인 분류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린네의 저서는 단숨에 분류계의 정석이 되었다. 린네가 가진 이 권위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린네의 분류체계가 너무나 그럴듯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 분류체계엔 별다른 객관성은 없었지만, 린네의 눈썰미와 직관 그리고 자신감은 이 분류체계를 너무나도 명한 과학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분류체계가 자연 속에 숨은 단 하나의 진실을 반영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분류학은 주관성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당연히 정답은 존재하진 않았고, 분류학계엔 영원한 분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분류학자들에게 분류학을 망치고 있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서로 대립하고 있는 학자들을 지칭했다고 한다. 이처럼 분류학은 과학 학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합의와 과학 사이의 그 무언가로 남았으며, 린네의 분류학만이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고 한다. 유전자 과학 기술의 발전이 분류학의 판도를 뒤집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장비를 통해 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게 되자 어떤 생물이 어떤 조상으로부터 나왔는지, 두 생물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 정량적 계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별 외양적 차이를 보이지 않아 분류체계가 애매했던 박테리아와 세균이나, 토끼와 세균처럼 비교가 불가능하던 완전히 다른 종도, 유전자를 통해 비교와 분류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는 분류학에서 사람의 감각과 직관을 제거하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메탄생성균이라는 세균은 기존의 세균과는 너무나도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졌고, 그 세균은 고세균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세균, 고세균, 그리고 인간과 모든 동식물을 포함하는 진핵생물, 이 세 가지의 거대한 범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인간은 기존 분류체계의 최상위 개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고릴라, 침팬지 등과 함께 영장류라는 카테고리에 묶이게 되었다. 인간은 단지 유인원이라니. 기존 분류학자들은 굉장히 반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의 패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탄생한 ‘분기학’이 있는데, 분기학자들에 따르면 파충류, 무척추동물, 그리고 물고기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분기학자들은 도대체 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을까? 분기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건 생명의 나무였다. 분기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아주 간단한 규칙을 통해 생명의 나무를 정리하였다. “한가지 분류는 공통 조상 아래 분기한 모든 종을 포함하고 그 외는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외양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범주로 묶일 수도, 아무리 외양이 똑같다고 해도 다른 범주로 나뉠 수도 있었다. 분기학의 규칙은 엄격했다. 우리가 물고기라 생각하는 종들을 분기학에 따라 나누어 보면, 포유류인 고래나, 폐로 숨쉬는 폐어와 같은 특이 케이스를 차치하더라도 공통의 조상으로 묶기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그 분류군 안에는 사람을 포함한 온갖 생물군이 포함되어 버리게 된다. 결국, 분기학자들은 두 가지 선택지 만을 제시하였다.

 

“인간도 물고기든지, 물고기는 없든지.”

 

 당연히 전통 분류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물고기는 너무나도 유별난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분기학자들이 물고기를 배척하는 와중에도 아직 분기학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분류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과학계에선 이를 ‘민속 분류학’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엔 놀라운 비밀이 존재했다. 바로 세계 곳곳의 민속 분류학이 서로 아주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린네의 전통 분류체계와도 매우 비슷하였다. 그리고 이 분류체계엔 물고기가 항상 존재했다. 인간의 뇌는 아마 수 십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의 이름을 지어 주고, 자연을 분류하는 본능적인 능력을 진화시켜 왔던 것 같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인종을 막론하고 어디든 비슷했을 것이다.

 

과거 인지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사람이 사물의 이름을 붙일 때에는 완전히 임의적이라기보단 물체들의 외양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런 이름 붙이기가 음성 언어의 탄생을 불러왔을 가능성도 암시한다고 한다. 자연에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 열망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인간만의 독특한 감각의 상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분류학에 도입된 과학적 기법들은 인간의 욕망과 감각을 소외시켰기에, 사업가들은 그 대신 마케팅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포켓몬(만화영화 캐릭터)와 각종 상품, 명품 브랜드 등에 적용시켜 이 좌절된 욕망을 무생물의 영역으로 끌고 오게 되었다. 이와 함께 저자는, 이것이 우리 인간이 자체적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배척한 특이종이 된 이유라고 주장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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