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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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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1,960회 작성일 24-05-14 00:53

본문

 시련은 우리 모두 알 듯 불현듯이 불쑥 우리 앞에 갑자기 찾아온다. 대책을 준비하지 못한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찾아온 시련. 그 시련에 대해 누군가는 합리화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하는 선택을 따라간다. 그러면 그 길이 시련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나의 의지로 결정된 과정이 아닌 수용이기에 또 다른 합리화를 할 수 있는 핑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시련에 기탄없이 직면하여 좁고 어려운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 소수는 어디에든 존재 한다. 이러한 소수자들은 다수에 속하는 우리와는 어떠한 점이 다르길래, 어떠한 특별한 능력이 있기에 그들이 선택한 방향으로 과감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 사회와 달리,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이는 인간은 참으로 덧없는 존재라고 느껴진다. ‘덧없음’, 다소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 덧없음이 우리가 마주한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시발점이지 않나 싶다. 덧없고 무의미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는 시련이라는 상황 탓만 하는 합리적인 선택만을 하는 다수들과 달리,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시련이란 삶 속에 그러려니 한 것 중 하나인 것으로 과감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 보기에 한심하기 그지없는 ‘덧없음’이 오히려 어떤 변화에 대해서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을 보이기에, 시련을 극복 해나가는데 하나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살아남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혹은 근래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살아남는 자가 결국 강자다.'라는 이야기 때문인가, 당장 죽임을 당해도 무방한 상황에 놓인 상황을 상상할 때,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 나가려 발버둥 쳤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살아남아 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의미라는 사명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고 말한다. 마치 독립이란 단어가 뇌리에서 잊혀질 만큼 암울한 시기임에도, 아직까지 이렇게 항전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그 시대의 독립 운동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부끄러웠다. 삶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뿐더러 일반적인 답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내 앞에 놓인 현실이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삶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자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권능을 그저 살아남는다는 이유로 놓쳐 버린다는 게. 왜 우리의 주권을 잃게 됐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금 주어진 시간, 이 순간에 어떻게 광복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이, 주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의미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이곳에 살아남는다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삶의 의미가 그와 같이 우연한 일에 좌우된다면

궁극적으로 삶의 보람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6-7 년 전쯤인가 꽃보다 청춘에서 한 외국인 여자의 'YOLO' 라는 말을 시작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나만 좋아하는 것이면 된다라는 생각이 한 시대를 팽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를 시발점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는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는 다소 개인주의적이고 세상이 따라왔다. 위로의 글귀로 보이는 제목의 책들이 수도 없이 출간되고 힐링 예능이 방영되는 지금, 어쩌면 오히려 사회가 그런 세상에 머무르게끔 종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의 나 안에 머무르면 안된다고 안주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내 삶에 놓인 시련에 의미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시련을 대함에 있어서 나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의지를 행사할 선택권을 버리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 방의 크기에 상관 없이 그 방을 균일하게 채우는 시련과 고난, 이들을 피하기 위해선 지금의 나에 안주하지 않아야 하며,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고통에 대해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시련이 왜 왔는지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 그 시련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질문으로부터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는 것은 그 사람을 타락 시킨다.

(중략) 

그 사람이 되어야 할 모습으로 바라 봐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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