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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된다는 건, 빛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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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2,091회 작성일 24-05-15 02:21

본문

손실된다는 건, 빛나고 있다는 것

비상문 - 최진영


내 동생 최신우는 3년 전에 열여덟 살이었고, 지금도 열여덟 살이다.

 

 얼마전,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한국의 자살자 증가추세가 국가적 위기 상태에 도달했다며 정부차원에서의 적절한 해결책을 촉구해야 한다는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창시절부터 언제나 ‘한국 자살률 OECD 국가 1위’라는 타이틀을 듣고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올해 1월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수가 1306명에 달하고 (전년대비 32%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죽은 사망자 수보다 자살자의 수가 더 많다는 걸 보니, 그 동안처럼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자살률 1위 국가다!' 할 게 아닌 수준이 되어버린 게 체감이 된다

 이 책 주인공 최금도의 동생 최신우 또한 자살로 사망하였다. 스스로 옥상에서 떨어졌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동생의 죽음. 동생이 죽고 나서야 형은 동생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본다. 학업도, 교우관계도 문제될 것이 없는 똑똑한 동생. 신우는 왜 죽었을까? 대체 어떤 점이 힘들어서 스스로 죽겠단 생각이 들었을까? 끊임없이 되묻고 주변을 찾아보지만 떠난 자는 말이 없고, 남겨진 사람들끼리 하는 고민은 부질없기만 하다. 오히려, 데면데면했던 형제 관계였기에 ‘신우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놀라며 새로 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동생이 살아서 보다 죽고나서 알게 되는 점이 더 많다. 장례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치루는 거라 했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에, 살아있을 때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원망 등 여러 감정들에 혼란스러워 하며 최금도는 신우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 동생의 장례가 끝이 나지 않는다.      

 

삶의 의미

“이유가 필요해? 넌 이유가 있어서 살아?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유가 중요한 사람들”

 이 책에서 형인 최금도는 결국 끝까지 동생 최신우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저 동생이 죽지 않고 살기를 바랄 뿐이다. 최금도는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죽으려는 동생을 설득한다. 그러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바람이기에, 이미 죽을 결심을 하고 ‘계속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데’ 되묻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설득과 이해를 거듭 시도해보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해탈한듯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해본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결국 이 책에서는 끝까지 최신우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도, 최신우가 살도록 설득될 내용도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한 마디에 모두 잠식당하는 이유들만 떠오른다.

 

냉소적 태도의 경계

 책을 다 읽고 나니 미국 유명한 TV show 진행자인 코난 오브라이언의 말이 생각난다.  

“All I ask is on thing, and I’m asking this particularly of young people. Please don’t be cynical. I hate cynicism, for the record, It’s my least favorite quality and it doesn’t lead anywhere. Nobody in life gets exactly what they thought they wer going to get. But if you work really hard and you’re kind, amazing things will happen.”

– Conan O’Brien-

 

 상상속에서조차 최금도가 동생을 설득할 수 없었던 건 평소 보였던 동생의 냉소적인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사 변호사가 되면 뭐하냐고, 성공하면 뭐하냐고, 어차피 상사한테 치이고 아둥바둥 일하는 건 똑같지 않냐며 내뱉는 말들과, 사람들이 행복하려고 하는게 역겹다며 내뱉는 염세적인 말들.

 최금도는 혹시 동생이 죽고난 후, 혹시 남 몰래 남긴 단서가 있을까 봐 동생의 교과서, 노트 하나 버리지 못했다. 그 중 물리 교과서에서 찾은 한 문구는 얼핏 보면 평범한 공부의 흔적이지만 어쩐지 동생의 생각인 것 같은 메모. ‘빛난다는 건, 손실되었다는 것.’ 별이 빛나는 원리에 대한 내용 옆에 저 문구를 적어놓으며 최신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고민해본다. 드넓은 우주 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존재로서 공허함과 무력감을 더 크게 느꼈을까?

삶의 의미가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냉소적으로 바라보아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다는 게 떠오르는 책이었다.

최신우는 정말 죽고 싶었을까? 죽기 전에 최신우가 남긴 말도 기억에 남는다. 더운 여름을 불평하고 가을의 낙엽을 아름다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한창 살아 있을 때, 푸를 때는 왜 아름답다고 하지 않지? … 다 푸르니까 모르지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 함성을. 시끄럽다고”

 

최신우는 어쩌면 차가운 세상 속 다정함을 바란 게 아니었을까

조금 더 다정하게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그런 삶 속이었다면 별을 보고 느낀 것이 손실이 아니라, 손실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빛남 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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