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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luribus u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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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241회 작성일 24-04-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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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pluribus unum ”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著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을 읽고 -


결국,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삭막한 세상에 던져두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명의 시작부터 두 다리 내딛고 살아갈 이 세상을 서서히 삭막하게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세상은 불과 170여년 전 만들어진 단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Survival of the Fittest.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이 「종의 기원」 제 5판을 출간하며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를 소개한 뒤로, 다윈 자신이 이후에 출간한 저서에서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the fittest) 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인류는 이 적자생존의 폐쇄적인 틀 내로 인류 진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둬 버린 꼴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남들보다 강해야 하고, 앞서나가야 하며, 심지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넘어뜨려 다신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뒤처지는 것보다 낫다는 생존 원칙을 강요하기도 한다.

 

Survival of the Fittest.

 

 그러나,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은 현대 사회의 잘못된 해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었다. 다윈은 자연 그 자체에 존재하는 친절과 협력의 현상을 관찰하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라고 말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친화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처럼 협력은 자연과 생물, 종의 생존에 있어 가장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전략이었다. 커다란 세포에 들어간 미토콘드리아, 동물의 장기 내부에 군집한 미생물, 개화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들 그리고 수천만 마리의 개체군이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는 초개체 동물인 개미들까지. 서로 다른 종끼리 혹은 같은 종 내부에서 서로 다른 개체끼리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오랜 시간 다져 온 생물은 결국 지구상에서 수없이 발생하고 멸종한 생명 속에서 꿋꿋이 버텨 온 것이다.

 

Survival of the Kindest

 

 누군가와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정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시작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결말에 함께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 단계 속에서 다정함 만이 전부는 아니다.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할 만큼 나도 충분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런 내게 도움을 주는 상대방도 충분한 조건을 갖춰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협력(으로 시작한 듯 보였던)관계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틀어지는 모습을 보면 서로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그보다 더 부족한 다정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제아무리 빠른 속도로 뛰어온 이어달리기 주자가 정작 바통을 다음 주자의 먼발치에 던져놓고 쉬러 간다면, 금메달의 주인공은 결국 조금은 늦었지만 서로의 손에 끝까지 바통을 쥐여준 팀이 될 것이다.

 

그 래서 오늘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가. 연구실을 함께하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함께 일하는 외부인들에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잠깐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늘 생각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못하고, 늘 노력하지만 아직은 부족하기만 하다. 나보다 삶의 경험이 많아 그만큼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은 내게 언제나 한결같은 가르침을 준다 – 친절한 이웃 같은 사람이 되라고. 서로를 향한 불친절함과 이를 넘어서는 적대심이 방아쇠를 당겨버린 어지러운 작금의 시기에, 한 걸음 더 배려하고 두 손 더 내밀며 세 번 더 안아줄 수 있는 그 따스함이, 그 친절함이. 마침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최적자(Fittest) 의 청사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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