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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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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2,067회 작성일 24-04-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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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 -




  우리 어머니는 성남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예전부터 간호사 일을 해 오셨다. 그렇기에, 딱히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나는 어머니를 따라 병원에 갈 일이 잦았었고, 병원 옆에 딸린 요양원에서 어린시절부터 엄마를 따라 멋 모르고 자원봉사활동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사회 취약계층 사람들, 소위 말해 장애인, 혹은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수 있었다. 몸은 아프지만 정신은 멀쩡한 분들, 혹은 정신은 아프지만 몸은 멀쩡한 분들, 둘 다 멀쩡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오게 된 분들 등등. 사실을 말하자면, 그곳에서 본 현실은 그렇게 밝진 않았다. 정신이 멀쩡한 분들은 그나마 낫다. 하지만,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이 아프신 분들은 지켜보는것도, 보살피는것도 쉽진 않았다. 그와중에 20대의 나이라 몸은 건장한데 정신이 아프신 분들은 그곳에 계신 복지사 분들도 대처하기 어려워 하시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린 노인 분들도, 어떻게 행동 할 지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그런 분들을 보며, 나는 이런 사회 취약계층의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 어릴때부터 종종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은 이런 사회 취약계층에 속하는 노인들과, 그 간병인들의 고통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명주와 준성은, 각각 치매에 걸린 70대 어머니와 뇌졸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간병인들이다. 명주는 과거에 다니던 구두 판매점에서의 화재로 인해 화상을 입은 상태로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를 간병하며 생활 보조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고, 준성은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새벽 대리운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혼 이후 13평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중년 여성 명주는, 치매로 인해 정신이 이상해지는 어머니의 폭언과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노모에게 쓰디쓴 말을 퍼부은 후 밤늦게 귀가해 노모의 싸늘한 주검을 발견한다. 준성은 고객의 고급 외제차를 주차하던 중 갑자기 일어난 손목 통증으로 인해 사고를 내게 되고, 보험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차주에게 직접 배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목숨을 잃는다. 이 책은,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 노인과 간병인들의 삶의 민낯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 집은, 예전에 내 형이 태어난 직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할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아가고 있다. 맞벌이셨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로 바쁘셨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두 사람이 없는 집에서 나와 형의 부모님 역할을 해주셨었다. 어린 시절 말 참 안들었던 우리 두 형제를 할머니께서 키워 주셨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지금과 같이 삶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언제까지나 집에서 가족을 반겨주고 있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가 최근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편찮으신 모습을 자주 보이고 계신다.


  옛날 할머니가 우리 할아버지 집안에 막 시집 오셨을 무렵, 할아버지의 친가는 결코 돈이 많고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를 키워나가셔야 했던 할머니는 공장일과 막노동일을 가리지 않으시며 악착같이 살아오셨다고 한다. 그 어려웠던 상황에서, 할머니는 어떻게든 우리 아버지만은 공부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고,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책에 쓰는 돈 만은 아끼지 말라고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한다. 결국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께서는 그 어려웠던, 결코 공부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노력하셔서 한국에서 명문대학교라고 불리우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셨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배곯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나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젊을적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몸이 노쇠하신 지금 젊을적 몸을 막 굴렸던 것 때문에 당신의 온몸이 자주 쑤신다는 얘기를 자주 하신다.


  문미순의 책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어릴적 보았던 요양원의 사람들과, 최근 편찮으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조금씩 겹쳐보였다. 혹자는 말한다.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사회의 돈을 빨아먹기만 하고, 생산성은 적기 때문에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돌려 다른 곳에 써야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장애인들과 같은 약자는 거대한 사회 앞에서 도구로써 취급되어 왔고 최근 들어서야 그들을 위한 복지가 조금씩 생겨나게 되었다. 나는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가 그들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사 강자와 약자는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세상에 이바지하며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거대한 강자 앞에서는 약자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약자를 위한 우리의 사회 모습이, 강자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할 우리를 지켜줄 하나의 비수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꼭 그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나는 우리 사회가 일생동안 열심히 사회와 가족을 위해 일해온 인생의 선배들과,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방황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것은 선조들, 그리고 부모들의 희생 위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당장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생산성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존중을 표하며,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의 주인공들인 명주와 준성은, 오랜 세월 차디찬 겨울을 견디어 내야 했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 듯 보인다. 지금 우리 주위에 존재할 명주와 준성과 같은 누군가는, 긴 겨울을 지내더라도, 그 끝에는 봄이 찾아오는, 그런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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