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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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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2,259회 작성일 24-04-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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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심장

-김숨 지음-


노동자와 노동의 의미


“철판이 이상해. 울고 있는 것 같아.”

“녹가루가 흐르고 있어서 그래.”

“철판이 나보다 낫네.”

“뭐가?”

“난 울고 싶어도 못 우는데.”


“눈동자에 낀 유리가루는 눈물로 씻어내야 한다. 눈물 말고 다른 걸로는 씻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울고 싶어도 참는다. 슬픈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우리에게 눈물은 유리가루를 씻어내라고 있는 거니까.”


이 소설은 큰 철배(철로 만든 배)의 심장 부분인 철상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철상자에서는 살인적인 노동이 쉴 틈 없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이 노동 현장에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물류팀에서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하루살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고용이 오직 하루만 약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들은 일당을 받으며 일하는데 온전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팀을 이루어 일을 하다가 선미는 철상자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팀원을 포함한 철상자 속 구성원들은 이러한 죽음이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찰해 보면 우리는 대부분 ‘일하는 사람’이지만 일을 노동으로 부르거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을 꺼린다. 우리에게 노동은 육체적으로 수행하는 것, 즉 몸쓰는 일엔 노동이라고 부르기 망설이지 않지만 지성이나 감성이 비중을 차지하는 일에 대해선 육체의 이미지를 축소하려고 든다.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자들의 육체가 첨단 기계에 의해 대체되며 육체라는 단어에 인격을 지워나갔고 근대에 이르러 노동이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긴커녕, 차별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부정적인 인식의 강화는 육체를 홀대하고 인격과 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합당한 대가와 처우를 받아야 한다. 내가 하기 싫어하고 혹은 하지 못하는 노동을 누군가가 하고 있어서 우리의 일상이 멈추지 않고 흐를 수 있다. 나는 대학원생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내가 사는 세상 밖의 겪지 못한 더 큰 세상을 바라봤다. 우리는 지성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육체를 사용하는 노동에 대한 경시를 멈추고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지성을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육체를 사용함으로써 그 일이 하찮고 낮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0의 불편한 진실


“0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도 없어.” 


삶은 노동과 일체화되어 그렇게 노동만이 이들의 삶의 전부가 된다.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일은 노동을 하는 순간 혹은 노동을 통해서 여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이 소설 안과 밖에 많이도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죽음 그리고 그 빈자리를 통해서만 그들의 존재를 확인받기도 한다. 가장 나쁜 것은 그런 죽음조차 은폐되는 것인데, ‘0’이라는 무사고, 무사망 등의 숫자는 동시에 이들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마저 부정해 버린다. 이런 죽음이 개인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이 된다고 할 때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 개인의 희생은 더욱 고독하고 숭고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 이전에 인간의 존엄은 삶의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래서 소설 속 크레인 위의 ‘정씨’와 같은 이는 끝내 고공에 버티어 서 있다.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인,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 철상자 안이 아니라 저 드높은 곳에서 보이길 원하는 것이고 결국 그것은 정씨 존재의 확인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죽음을 껴안고 있는 것이지만, 철상자 속 이들에게 죽음은 유독 가시화되어 있다.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며 더 숙연해지는 것은 지독하게 반복되는 노동의 문제에 대해 막연하고 희망적인 말로 마무리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비심장’ 책의 발화는 0으로 기록되는 숫자 너머에 있는 인간에 대한, 노동하는 육체에 대한 순수한 기도에 가깝다. 쇠와 피의 성분이 같다는 사실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쇳덩이에서 피 냄새가 난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추궁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제비의 심장이여,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오."


이 책의 작자가 쉼보르스카의 기념이라는 시에서 작은 새의 심장에 대고 기도하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 소설에 노동자들이 배를 만드는 철심장(철상자)이라는 공간이 제비심장을 의미한다. 철심장은 피가 흐르지 않고 차가운 공간이지만 작자는 그 공간이 제비심장처럼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붉은 피가 흐르는 공간으로 다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제목을 정하였다고 밝혔다. 쇠는 녹슬고 인간은 죽을 운명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확인은 정당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의 냉소가 정직한 육체의 노동에 대한, 자신의 삶에 대한 온전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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