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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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기로 얼어붙은 땅이 녹고, 풀잎이 돋는 것을 시작으로 개화를 해서 그런가 봄이라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4계절의 순서와 같이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젊고 혈기 왕성한 단어에 많이 사용이 된다. 어떠한 일을 마주한다 할지라도 겸허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청춘(靑春) 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러하다. 그리고 청춘이라는 단어는 만물이 푸른 봄처럼 푸른 시절을 보내라는 의미에서 느껴지듯 낭만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아직 청춘을 부정할 만큼의 나이가 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춘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긍정할 정도로 내 삶은 찬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나는 요즘 어지러운 청춘, 이라는 난춘(亂春) 의 제목인 새소년의 노래를 요새 즐겨 듣는 중이다.
“오늘 하루, 시작부터 소나기를 맞았어도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하늘이 아닌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금전적인 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무언가를 이루는 성취감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느끼는 삶의 동력이란 경제적 자유와 넘어지지 않으며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성공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데 있는 것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수 없이 넘어지고 가끔은 나이 들어서 까지 몸에 남는 흉터를 가질 정도로 다칠 정도로 넘어짐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감히 영광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가 청춘이라는 단어에 설렘을 느끼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아니할 것이다. 충동적이고 헛된 것으로 보이는 꿈이라고 타인에게 질타 혹은 혹평을 받음에도 청춘이라는 단어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그들에게 겉으로는 어리석다고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고 넘어짐에도 꿋꿋이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꽃길을 찾아 헤맨 시간이 아깝다.
꽃길을 따로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내가 지금껏 지나온 길도 꽃길이었다.”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나 자신을 대함에 있어 남을 대하는 것과 달리 함부로 대하고 평가절하를 한다, 내 안의 나 자신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것이 인색해졌으며, 왜 더 잘하지 못했나라는 죄책감에 나를 꾸짖고 몰아세운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에 대해 후회와 탄식만을 하면서 지내게 되고 얼굴에 나타난 주름은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입힌 마음속 상흔처럼 깊어져 간다. 이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오늘의 나는 실패를 하고 있다는 패배감으로부터 기인한 것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보다 빛을 발하고 화려한 길을 걷고 있는 남을 모방하려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사막길라 치부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 만이라도 꽃길이기를 바라면서. 아름답다, 의 어원은 나다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점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화려하고 수려한 것을 지칭할 때 한정되어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 이의 화려한 꽃길에 대해서 아름답다라며 감탄하면서 간과한게 있으니,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그대들이 아닌 내가 걸어온 길인 것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숨이 막힐 만큼 화려한 벚꽃이 언제 만개를 했냐는 듯, 살랑이며 휘날리는 봄바람에 떨어져 빈 자리에는 생기 돋는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짧디 짧은 1주일간 만개했다가 흩날리는 벚꽃의 모습이 허상하거나 덧없게 느껴지는가? 화려한 꽃비 속을 그리고 바닥에 수놓아진 꽃길 위를 걸으면 그러지 아니하다. 그렇다, 나의 청춘이 지나 나이 든 내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이 아니라, 청춘이 내리고 난 또 다른 설레이는 아름다운 내가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새소년 ‘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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