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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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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095회 작성일 24-05-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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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무엇, 이라는 표현은 보통 시적으로 너무 이른 시기에 일어난 무언가를 지칭하곤 한다. 연애에 대한 담론이라면, 한낮의 연애라는 표현은 남녀가 서로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찾아온 사랑 비슷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 ‘필용’은, 명예 퇴직 압박을 받고 있는 (추측하건대 무언가 큰 사고를 친 모양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영업사원이다. 평생 해본 적 없던 시설직으로 인사이동을 발령받던 날, 문득 그는 16년 전 미국 유학을 준비한답시고 어학원에 다니던 때에 우연히 만났던 대학교 과 후배 ‘양희’가 감독하는 연극 포스터를 마주치고는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필용은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점심 때마다 근처 맥도날드에서 같이 점심을 먹다가 문득 ‘사랑하는 것 같다’라는 다소 이상한 고백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덧붙이다가 며칠 뒤 더 이상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과 함께 둘은 다시 멀어지게 된다. 아마도 멀어지고 나서야 필용 역시 양희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 같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양희가 감독하는 참여형 연극을 관람하러 간 필용은 연극이 진행되면서 설정된 ‘인공적인 어둠’ 속에서 눈길을 잠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공연장을 나가는 필용에게 조용히 손을 흔드는 양희였지만, 필용은 끝내 양희와는 말을 섞지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후배에게 농사를 짓던 양희의 본가가 홍수로 인해 수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양희가 있는 본가에 찾아가게 된다. 거의 무너져가는 본가에서 만난 양희는 어학원에서 양희를 만났을 때 느꼈던 수수함, 투박함 등의 분위기가 무력함’과 비슷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양희의 말에 무심코 심한 말로 대답한 것에 대한 뒤늦은 사과에 양희는

“선배, 사과 같은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라고 말하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양희의 연극 또한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서 둘은 다시 (아마도 영원히) 멀어지게 되고 시설직 일을 하는 필용이 담담하게 양희를 회상하는 듯한 묘사로 이야기는 끝난다.

위의 대사에서도 느껴지지만 양희라는 인물은 참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소설에서의 묘사도 투박한 야상을 입고 때로는 퀴퀴한 체취까지 풍긴다고 묘사된다. 별다른 소원이나 의지는 없이, 외부에서 받은 상처 등으로 인한 무기력함과 냉소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사는 인물이다. 반면 필용은 회사 생활에서도 그렇고 사랑에서도 그렇고 자신이 뭘 원하는 지를 잘 모르는, 자기 주체적인 행동을 잘 하지 않는 듯한 인물로 묘사된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의 빈 부분, 모난 부분을 감싸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양희는 필용의 이러한 빈 곳을 보고 일종의 동정을 느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싹튼 사랑은, 필용의 우유부단함과 그에 대한 그녀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에 결국 바래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지만, 본 작품의 필용에게 다가온 인연이 그랬듯 가랑비에 젖는 듯한 사랑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후자의 경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전에 끝나는 경우도 많은 듯 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소설에서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저 작가는 10대, 20대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보았음 직한 그런 인연을 담담한 어투로 그리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노력에 배신당해 상처 입은 채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필용’들에게 양희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흔들어주고 싶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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