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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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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2,403회 작성일 24-04-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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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


 한 자리에 앉아 끝까지 읽도록 이목을 집중시킨 책이 있다.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작품, 『노인과 바다』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심심한 시간을 채워줄 적당한 길이, 적당한 재미, 적당한 평판이 이 책을 한순간에 다 읽게 만든 요인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그다지 인상 깊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실 헤밍웨이가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자는 삶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책을 읽고 긍정적인 감정보단, 부정적인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결국,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 물고기, 계속되는 바다 생물체들의 공격, 불리하고 불행한 기운 속에서 홀로 싸운 노인, 그렇게 잃게 된 그의 건강, 그리운 이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래서 느껴지는 허전함, 외로움, 죽음.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과 유사하지 않은가. 하여,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색을 띠는 이 책의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할까 고민하다 작품의 일련성과 내 삶의 일부가 굉장히 겹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인과 바다’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고독 속의 치열함은 삶의 마지막 순간의 나를 묘사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순간에 남보다 못하는 사이가 되거나, 다분히 어색했다고 생각한 사람과 끈질긴 인연을 맺는다거나, 또는 오래 친해도 조금 못 보면 흐릿해지고 조금 친해도 많이 보면 짙게 되는 그러한 혼란스러운 관계에 놓여있다. 그리고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남는 것은 많이 친했던, 조금 친했던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갖게 되는 병 중 가장 아프고 흔한 것은, 어쩌면 ‘고독’, 우리 모두 죽음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쓸쓸함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남긴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직 ‘쓸 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주변의 색깔이 다채로워지고, 나의 쓸모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노인도 당신에게 불합리고 불리한 상황일지언정, 끝까지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 보여준 고독 속의 치열함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의 끝 부분에서 나의 가치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음을 묘사한 것임을.

 


"Now is no time to think of what you do not have. Think of what you can do with what there is.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다.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긍정적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건가. 보통은 무기력함, 무감각함, 무의미함만을 남기고 삶의 허탈함을 보여주기 일쑤인데, 어째 이 작품은 죽는 걸 알아도 생동감 넘치게, 죽기 전에 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어쩌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색이 아니라 밝은 색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대하는 노인의 성숙한 태도를,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당당한 자세를, 당연한 고독에 맞서는 거대한 숙제를 잘 해내며 삶을 마무리하고 있는 노인은 현대사회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주고 있는 것만 같다. 비록,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의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나의 감상이 다수의 감상과 다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나는 이 책을 보며 그런 희망과 기운을 얻고 성숙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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