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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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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282회 작성일 24-04-1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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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리나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지은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의 친오빠인 스테판이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스테판의 아내인 돌리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두 사람의 가정은 파경을 맞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스테판의 가정을 되살리기 위해 돌리를 찾아가고, 그녀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안나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이 첫 만남에서 브론스키는 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지만, 안나는 유부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인 키티는 마음속으로 브론스키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스테판의 친구인 레빈은 키티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낙심한 레빈은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러던 중, 브론스키는 동네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키티와 안나를 보게 되는데, 키티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안나의 모습에 또 한번 반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구애를 한다. 안나는 처음에 브론스키의 애정공세를 거절하지만, 결국 그에게 넘어가고 만다. 한동안 브론스키와의 위험한 밀회를 계속하던 안나는 남편인 카레닌과 아들을 떠나 동거를 한다. 안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책 배우자인 아내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완벽주의자인 남편에게 있어 이혼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력을 가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한편 브론스키를 짝사랑했던 키티는, 반대로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왔던 레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닫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그에 반해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가지게 되지만, 사정은 더욱 악화하고 있었다. 남편과는 이혼하지 못했고, 아들의 얼굴은 볼 수 없으며, 브론스키의 사랑마저 변하고 있다며 의심하게 된다. 안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브론스키의 사랑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었고, 설령 브론스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한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오해와 분노로 휩싸이고 있었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마음이 변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죽음으로 그의 변심을 징벌하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만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 내에서 19세기 러시아 사교계의 위선적 면모를 비판했다. 사실 안나의 불륜 관계는 당대 러시아 상류층 사이에서는 매우 흔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 전반에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안나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은 것은 승마 경기에서 브론스키의 부상에 경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륜 관계를 공적인 장소에서 드러내지 말라는 암묵적인 룰을 어겼기 때문이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보단, 아내가 자신의 불륜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체면은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사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일단 체면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당대 러시아 상류층 문화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이 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생각을 너무나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안나의 심리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불륜을 저지른 주인공이라 것만 놓고보면 누구나 부정적인 인식이 들지만, 애정결핍을 느낀 안나의 심리와 상황을 부각시키며 그녀의 상황을 오히려 공감하게끔 만들고, 과연 우리가 그녀를 욕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즉 작가가 안나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점점 몰락해가는 안나의 모습과 키티의 사랑과의 비교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 중에서 키티는 레빈과 자식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시골 생활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보인다. 둘 다 브론스키와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다른 행동과 결과는 잔인하리만치 대비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앞장에도 쓰여져 있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구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은 전보다 훨씬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기술에 따라 발전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이는 정답이 없을 뿐더러 개개인이 깨우치며 알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다. 19세기 인물 안나 카레니나가 받은 연인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시대상이 다를 뿐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아직까지도 명작이라고 칭송받는건가 싶기도 하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조금만 더 의연하게 대처한다면, 절망적으로 보이는 관계, 상황도 다시금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가 키티와 레빈처럼 삶의 이유를 찾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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