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_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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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위의 자유로움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부(天賦)의 사상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이야기하는 자들로부터, 우리는 공동체의 존속 의의를 찾아내었으며 개인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과거로부터 고도화되는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국가는 의지,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개인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파생된 의지론의 결과는 한데 모여 국가의 의지(一般意志)를 만들어내었으며, 이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지로써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형태로, "법"이라는 하나의 사회계약을 만들어내었다. 따라서 국가의 경영은 시민과 국가의 일반의지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이루어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사회정의"이다.
루소는 국가의 "정의"를 구성하는 개인, 혹은 시민의 의지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앞서 말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혹은 더 큰 공동의 "선"을 말하는) 일반의지, 그리고 개인의 사욕을 추구하는 특수의지가 있다. 이때, 루소는 공공의 이익의 집합체인 일반의지는 항상 옳은 전제인 것과 달리 단순한 특수의지의 합인 "전체의지"의 경우 그 정당성과 올바름은 보장되지 않으며 국가가 일반의지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의 권리를 양도받았을 때만이 사회계약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루소가 제창한, 이러한 의지들의 "구별"이 모호하였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여 보자.국가의 대의 중, 일반의지의 가치가 "전체의지"의 가치로 치환이 되었을 때, 인간의 "자유의지"의 권위는 큰 도전을 받게 된다. 멋진 신세계는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묘사한다. 전체의 공공의 선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철저하게 억압된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과 정부의 통제로 인해 안정과 행복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은 억압되어 있다.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규격화, 정형화되어 있으며, 개인은 수정란 상태에서 미리 정해진 운명에 맞게 조건화된다. 주인공 버나드는 이런 인위적인 행복에 대해 인간성을 억압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저항하지만, 결국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책이 출판될 당시, 이는 미래에 대한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이 약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들에게 회자가 되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종된 사회에서의 한 개인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서론에는 15년 뒤 이에 대한 서평이 적혀있다. 놀라운 점은, 내가 지금 이걸 보는 순간인 2024년에도 비슷한 경향이 전 세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대중들은 자신을 빈곤에서 구해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 아무리 자유 의지가 인간 욕구의 천부 중 하나라고 해도, 생존에 직결된 상황에서 자유라는 존재는 사치일 뿐이니 말이다. 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가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배고픔을 겪은 그들에게, 그들이 겪고 닦아내온 풍요의 디딤돌에서 자란 내가, 자유의 중요성을 그들에게 역설할 자격은 없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지금 절대 빈곤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에 대입해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많은 이들은 인권이 후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경제 성장은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인가, 아니면 하나의 "의지"인가? 인간은 의지로만 살 수 있을까? 무엇이 과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혹은 자유 의지는 배부른 자들에게만 허락된 상황인가?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대가로 빵을 얻게 되었다.
지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들을 결코 돼지라 평가할 자유가 없다.
자유를 대가로 빵을 얻기를 원하는 그들의 선택이, 결코 정당하지 않다 말할 수 없다.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지만, 그 대가로 안정과 풍요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이 소설은 간접적으로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성을 억압당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일까? 이 책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철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도 인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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