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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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쇼코의 미소>에는도 영화 감독을 꿈꾸다가 결국 30대에 접어들어서 꿈을 포기하게 된 ‘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인 소유는 고교 시절 우연히 일본 고등학교 교류 프로그램에서 만난 일본인 여학생 ‘쇼코’와 만나게 되고, 쇼코는 일주일 동안 소유의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아버지는 작품을 읽어보면 사별한 것 같다.) 소유의 집에서 머무르게 된다. 쇼코는 도쿄대 진학을 염두에 둘 정도로 우등생이었고, 소유 역시 영화 감독을 꿈꾸는 재능있는 아이였다. 쇼코는 소유의 할아버지와 굉장히 친밀하게 지내다가 시간이 흘러 둘은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유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가 쇼코와 같이 당시 한국에 왔었던 ‘하나’를 만나서 쇼코의 소식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도쿄대 진학을 포기하고 근처 읍내 대학을 진학했다고.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직접 갔다가 간병에 전념하면서 무언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 – 당시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 작품 말미에서 밝혀진다 – 쇼코를 보고 실망하면서도 내심 우월감 비슷할 것을 느끼며 귀국하게 된다. 그 이후 영화 감독을 꿈꾸다가 현실의 벽과 한계에 좌절감을 느끼며 자신의 자취방에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던 소유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취방에 찾아와 “대단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날을 기점으로 꿈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은 쇼코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오랜만에 소유와 재회하게 되고, 혼자가 된 서로를 인지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영화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그들의 재능과 나의 재능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영감은 고갈되었고 매일매일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알코올중독자가 된 감독 지망생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야근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보며 내가 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 본문 中
이 작품은 정신적으로 아프고 결핍이 생겼던 두 여학생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한 때 예술계의 냉혹감을 잠시나마 경험한 적이 있던 나는 글을 보고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두 학생의 심정에 이입하면서 글을 읽었다. 여기에도 몇 번 쓴 적이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학부 시절 나는 취미 이상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한 부업으로 캘리그라피 (손글씨)를 이용하였다. 스스로 이런 말을 적자니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붓이나 붓펜, 잉크펜 등을 들고 끄적이고 있으면 보고 있는 사람들이 ‘와’ 소리를 할 정도는 되었으니까.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려보고 전시전에 참가하거나, 시급 5-10만원 정도를 받으면서 행사를 뛰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학부 시절 나는 교내 동아리가 아니라 대전에서 손글씨를 쓰는 모임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당연히 거기에는 전업으로 글씨를 쓰는 작가님들이나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많이 계셨다. 잠시 전업으로 나갈까 고민하다가 나보다 몇 배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시는 분들이 혹독한 프로의 길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것을 보면서 감히 저곳은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반도체 분야를 택해서 박사과정까지 하고 있고, 지금도 이 결정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영화, 영상, 음악, 미술 등 예술계에서 프로의 세계는 정말 혹독하다. 간단한 비교를 해 보자. 랩미팅 때 헛소리를 하거나 허점을 보이면 심하게 혼나기는 하겠지. 아니, 오히려 혼난다는 거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일 수도 있다. 지도하는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감정소모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하겠다는 것은, 학생으로서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반면 예술계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설득하고 selling point 를 남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혼나는 것 정도는 애교 수준도 안되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일거리가 없어지고,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강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생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다른 경력을 쌓을 기회가 없으니 30대가 되어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 밖에 없다. 안전망이 없는, 실력과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가혹하게 도태되는 세계이다. 그들(디렉터, 사장 등)은 실력이 없는 사람들을 혼내지 않는다. 그런 정신 소모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냥 내치거나 작품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뉴욕예술대 졸업생들에게 축사를 하러 온 원로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첫 마디를 “축하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들 x됐어요! (You are fxxked!)”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회에서 졸업생 여러분들이 맞이할 예술계의 혹독함, 평생에 거쳐서 겪게 될 거절의 문 (The door of rejection)을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next (다음)’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라는 따뜻한 충고를 해 준다.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을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이 혹독한 세계에 뛰어든 모든 이들이 최대한 편안함에 이르렀으면 하는 생각을 끝으로, 부족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다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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