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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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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2,498회 작성일 24-03-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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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책 서두의 ‘천상의 서곡’의 이 한 문장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였고 파우스트를 나타내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와,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울타리에서 어느 시기보다 많은 방황이 찾아온다. 감사하게도 동기들과 각자의 방황과 고민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서로의 지지목이 되어 주기도 한다. 서로 조언하기도 해주고 경청하며 서로를 도왔던 연구실의 우리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지금은 방황의 높낮이가 큰 시기라는 것을. 파우스트의 문장은 내게 우리가 방황하고 고민하고 있는 순간은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다가왔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파우스트 역시 안주하기보다는 방황하기를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주님은 이야기한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하지만 파우스트는 자신의 관점이 올바르다고 과신하기보다는 더 참된 깨달음을 향한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 인물이었다. 사회적 지적 자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제자에게도 인정받는 스승이었지만 여전히 이성적 탐구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파우스트를 읽으며, 더욱 발전된 지점을 향한 노력과 방황의 순간을 겪는 나와 우리를 이제는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에서 그치지 않고 찾아올 방황의 순간이 이제는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모른다고 바라보려고 한다.

 

 


 다음으로, 파우스트의 합리성에 대한 추구는 절대적인 믿음의 위험성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파우스트는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계몽정신을 가진 인물이다. 파우스트가 파멸로 향하는 점이 괴테가 신을 믿지 않는 인간에 대한 경계를 나타내려고 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를 현대에 접목시켜보면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위험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파멸과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순간에 파우스트는 이성의 추구와 쾌락의 경계라는 가치관 아래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뇌의 시간 동안 사건은 전개되어 결국은 비극의 결말을 맺고 만다. 동시에 메피스토텔레스는 쾌락적 선택을 종용하는 동시에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갖는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물론 현대에는 이성의 영역 뿐 아니라 감성의 영역 역시 존중되고 있으며, 합리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시대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여전히 존재하고 종교, 인종 등 구획을 지을 수 있는 영역에서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영역에서도 다른 시선을 겸비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에만 매몰된 삶을 볼 수 있다. 각자에게 삶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들과 그 가치 간 중요도는 다른데, 입시, 취업, 취미 등 다방면에서 정답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맹목적 추구 현상을 우리는 꽤나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파우스트의 비극은 믿음이 사실이 되었을 때 초래된 ‘비극’이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믿는 것들을 모아 ‘사실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상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과연 이 가상이 사실상의 인간인 것일까. 파우스트의 비극은 여전히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비극일지도 모른다.

 



 서곡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인 괴테는 작품의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이처럼 붐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도다.”

 

 비극의 순간들을 겪으며 파우스트는 더 이상 절대적인 지위로 자신을 격상시키기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이 대사가 나에게는 ‘무언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타자와 시선을 공유한다면 인간은 때로는 방황할 수 있겠으나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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