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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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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호석
댓글 0건 조회 2,454회 작성일 24-03-1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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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카프카의 문체는 미사여구가 없고 간결하고 사실적이다. 그러나 기술되는 내용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소설 「변신」에서 카프카는 변형기담(變形奇譚)에 이상한 사건을 예사롭고 사실적인 일처럼 묘사하며 일상적인 것과 환상을 결합하여 ‘꿈같은 현실성’을 문학으로써 표현하였다.

 

나의 본질은 불안이다(ist ja mein wesen; angst)

-프란츠 카프카-

 

독일 병정처럼 냉정한 아버지와 소심한 어머니, 귀여운 여동생을 부양해 온 젊은 보험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한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족들 역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모습을 보고는 충격받는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려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족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 단지 가족들이 하는 얘기만 들을 수 있다. 아버지는 조금도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냉혈한으로 행동한다. 아들의 변한 모습을 보고 사과를 던져버린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우물쭈물거리다 벌레가 죽자 홀가분하다고 여긴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동생은 태도를 돌변하고, 벌레로 변신한 오빠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자신을 진정 사랑했다고 여긴 여동생의 행위가 진실한 애정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을 맞는다. 결국 그레고르는 직장과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했음에도, 그간 아무도 진정으로 대해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작품은 나이고 내 이야기들은 나다,나와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가 성장하고 세상사에 눈을 뜨며 작가로 활동했던 시대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초기 자본주의 사회였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든 것을, 심지어 인간조차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판단하였기 때문에 경제력을 읽는다는 것은 큰 상실이 아니었을 수 없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은 사회적 기능을 잃었다는 것이기에 그는 더 이상 ‘가치’있는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레고르에게 이 일이 어느 날 한 순간에 일어난 것이었으며 인간으로서 그가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레고르의 가족도 겉으로는 공동 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막상 벌레로 변신하여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자 공동 사회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곧바로 이익 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인다. 이익 사회를 규정짓는 특징은 바로 인위적이고 관념적이며 기계적인 가치다.

가족 관계조차 경제적으로 맺어져 있는 사회에서 더 이상 경제적인 창출을 만들지 못하게 된 그레고르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레고르는 한 마리의 벌레로 죽어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경제적 무능력자로 죽어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고 생각에 달려 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우리가 벌레라고 생각하면 진정 벌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모래알 같은 가족들이 보여주는 외면과 거기서 느끼는 소외감을 통해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카프카는 이 작품이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부자가 갑자기 가난한 사람이 된다든지, 건강한 사람이 병자로 바뀌며, 남의 죄를 다스리던 사람이 죄인으로 바뀌는 역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카뮈와 사르트르, 그리고 카프카

 

카프카의 실존이란 다른 실존주의 작가들과는 또 다른, 어찌 보면 우리가 아는 실존주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카뮈의 이방인이나 사르트르의 구토에서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며 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카뮈나 사르트르의 실존은 철학적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세계에선 주인공을 향해 일방적인 돌팔매가 날아온다. 주인공은 표적이 되어 일방적으로 당하며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의 소설은 원초적이다. 주인공은 벌레가 되어 가족조차 자기를 밟아 죽이려 하고, 이들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소설 「변신」은 인간의 실존을 벌레의 생존에 빗대어 놓은 괘씸한 작품이다. 카뮈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 속엔 항상 ‘부족함’이 있다.

‘부족함’은 경쟁을 야기하고,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이런 경제적 경쟁에서 역시 사회적 패배자는 발생한다.

결국 벌레 그레고르는 숨을 거두었고 그가 사랑했던 가족들은 비로소 앞날의 행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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