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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설계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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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2,949회 작성일 24-03-1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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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설계의 아름다움

 Peter Zumthor – 「분위기」, 「건축을 생각하다」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독일에 있다는 한 농부의 개인 예배당 ‘Bruder klaus field chapel’

작고 좁은 건물 내부이지만 마치 깊은 숲 속에 들어 앉아있는 듯한 웅장함. 빛을 따라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시선과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에 의해 느껴지는 경외감. 사진으로도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구나. 처음 생각 했다. 이런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찾다가, 그의 강연집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건축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밀은 세상의 서로 다른 사물들을 수집한 다음 그것들을 결합해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춤토르(Zumthor)에게 질 높은 건축이란 자신을 감동시키는 건물이다. 그리고 그 감동은 건물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이 분위기를 설계하기 위해서 춤토르는 단순히 건물의 외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목적, 사용되는 재료, 지역환경과의 조화,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의 동선, 발생하는 소리와 소음, 빛, 온도까지 건물의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로 넘어가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고려한다. 명품과 보세는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춤토르의 작품들을 보면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으로 주는 감동이 있다.

실제로, 춤토르에게 프리츠커 상을 안겨준 발스온천(Therme vals)은 누구나 쉽게 따라하거나, 해보았을 것처럼 보이는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단순함이 지루함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세부적인 디테일들로 인해 스위스의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있다. (퇴적층 디자인을 만들 때 같은 두께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두께의 돌들을 섞어 자연의 불규칙함을 유도하거나, 온천 내부의 빛을 자연동굴의 빛으로 보이게 설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은 디테일들로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을 설계한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춤토르가 건물 설계를 위해 고찰하는 내용이 반도체 설계와 연구를 하는 부분에서 유사한 면이 많다고 느꼈다. 춤토르가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고려하는 요소들을 보며, 하나의 소자를 만들기 위해 나는 저렇게 깊은 고민을 하며, 요소 간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점검하고 검증하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좋은 건축은 방문자를 맞이하여 방문자가 건축을 경험하고 그 안에 살도록 해야한다. 온갖 회유책으로 끊임없이 말을 거는 건물은 재미가 없다. (중략) 왜 우리는 소재, 구조, 시공, 시간, 땅, 하늘 등 건축을 만드는 기본 요소에 대한 신뢰가 그토록 낮을까? 우리는 벽면, 소재, 돌출, 공허함, 조명, 공기, 냄새, 수용성, 공명 등이 세심하게 고려된 공간, 그 진정한 공간에 대한 신뢰가 없다

 

나는 건축을 메시지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은 내부와 주변의 삶을 담는 봉투이자 배경이며 바닥에 닿는 발자국의 리듬, 작업의 집중도, 수면의 침묵을 담는 예민한 그릇이다.

 

 춤토르는 분위기 있는, ‘잘’ 만든 건축을 하기 위해 근본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건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이라 여기며 화려하게 디자인해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본질을 유지하고 실질적인 장소에서 정확한 기능을 하는 것. 이 때 비로소 건물자체가 힘을 가지며 아름답다고 여긴다.

춤토르는 본인 건축에 대한 철학을 말했는데, 읽은 나는 머리를 맞은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기능에 충실하게 잘 만들면, 장황한 설명과 포장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힘을 가질 텐데, 나는 조그만 내 연구과정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너무 장황한 설명을 붙여온 것이 아닌지 돌이켜본다. 물론 연구라는 것이 처음부터 잘 나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잘 나오기 위해 춤토르가 건물을 설계할 때 고려하는 만큼 나 또한 모든 상관관계를 고찰해보았느냐 물어보면 부족해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때린 사람은 없지만, 혼자 상처받은 마음을 극복해보기 위해 처음 언급한 Bruder klaus field chapel로 다시 돌아가본다. 이 삼각형 예배당이 특별한 이유는 내부 콘크리트 벽면이 모두 통나무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검게 그을려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섬세하고 창의적인 건물은 사실 일반적인 노출 콘크리트를 만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굳으면 다시 거푸집을 뜯어내는 간단한 방법이다. 다만, 이 거푸집을 일반적인 합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통나무를 세워 쌓고, 뜯어내는 대신 통나무에 불을 붙여 태워 없앴다. 불에 타는 과정에서 생긴 그을음이 벽체에 남아 새로운 색상을 연출하면서 예배당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사실 이 건물은 건물의 기초조차 다지지 않고 바닥에 납을 부어 납 바닥이 건물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으며, 전문 시공인이 시공한 것도 아닌, 마을 농부들이 짬짬이 힘을 합쳐 공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창의적인 설계로 인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을 뽐낸다.

 

건축은 최종적으로 시공된 형태로 물화된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곳이 건축이 존재하는 장소이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장소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건축물에 대한 묘사는 무언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이다. 그 건축물은 그것이 예정된 세계에서 아직 자리를 찾지 못했다.

 

 어설프더라도 빨리 자기 목소리를 내어 시공된 형태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찾아 계속해서 천착하는 것이 맞을까? 어느 순간 이런 고민조차 우스워지는 완벽한 하나의 건물을 원활하게 시공하는 연구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춤토르의 건물 사진들이 담긴 한 사이트의 링크 함께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https://www.dezeen.com/2009/04/18/key-projects-by-peter-zum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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