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이방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2,546회 작성일 24-04-05 15:50

본문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유명한 이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1부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다음 날 바닷가로 가서 만난 마리와 연애를 하게 되며, 이웃인 레몽의 부탁을 들어준 보답으로 별장으로 초대받는다.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전개되던 1부의 마지막, 뫼르소는 별장 근처 강렬한 태양 빛이 내리쬐는 해안가에서 아랍인을 살해한다. 권총으로 한 발, 그리고 연달아 네 발 더. 살해된 아랍인은 그의 친구인 레몽에게 원한이 있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뫼르소와는 관련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아랍인을 살해한다. 그렇게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 함께 그의 일상은 파괴된다.


 2부에서는 뫼르소의 재판과 판결, 수감과 처형 직전까지의 상황이 묘사된다. 그는 변호사와의 면담 시간에서도, 재판에서도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마치 자신의 재판이 아닌 것처럼, 살인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느끼지 않으며, 그저 타인에게 발행한 한 사건 정도로 치부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검사와 재판장, 그리고 군중에게 관심과 분노를 일으켰다. 그의 죄목인 살인 보다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바로 다음 날, 바다에서 수영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으며,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점이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인식시켰고, 사회는 그에게 등을 돌리며 사형을 선고한다.





 소설 이방인은 부조리와 반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알베르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세계는 상반되어 모순이 발생한다. 카뮈는 이것이 ‘부조리’이며, 인간의 숙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가 자각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일상을 살며,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에 무관심하고, 인생에 뜻이 없는 사람들. 부조리와 맞서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 그러한 태도가 ‘반항’이다.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가 바로 그러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다. 장례식에 참석해서도 어머니 얼굴을 보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되려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듯 졸기도 한다. 그는 그저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그저 ‘지금 피곤하니 자고 싶다‘라는 생각만 한다. 장례식을 치른 이후에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주말을 보내며, “오늘도 여전히 길고 지루한 일요일이었고, 이제 엄마는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일하러 갈 거고, 결국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감각이나 회상조차 하지 않으며,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그는 이방인이다.





 작년 초, 나는 뫼르소와 같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지나온 석사과정 첫 1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무뎌졌고,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지난 1년과 비교했을 때 변화하지 않는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고, 점점 나는 기계화되었다. 어떤 희망을 좇아 혹은 삶의 의미를 찾아 움직이기보다는 관성적으로 행동했다. 삶이 지루하다는 자각조차 못 했던 거 같다. 대학원에서의 나의 모습을,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쯤, ‘슬램덩크 더 퍼스트’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만화로 완결이 난 ‘슬램덩크’의 마지막 경기를 애니메이션화한 영화로, 원작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영화를 보고 향수에 젖어 원작을 다시 찾아보았다. 명장면이라고 회자되지 않지만, 그 당시 나에게 와닿았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중학교 시절 대회 MVP까지 차지한 정대만은 고등학교 진학 후 양아치들과 어울리며 농구부를 탈퇴한다. 2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흐르고 그는 사죄의 눈물과 함께 복귀한다. 하지만 지난 2년의 과오로 인해 그의 체력은 3쿼터가 끝나기 전 방전되었고, 그는 ‘나는 왜 그렇게 헛된 시간을…’이라는 탄식과 함께 교체된다. 그 모습과 대사에서 내가 보였다. 부조리에 반항하고 후회할 나의 모습이.


 졸고 있던 나의 의식이 깨기 시작한 건 그 이후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었다. 의미 없고 지루한 일상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반항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이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삶과 학위과정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학위과정이 끝나갈 때가 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의미를 찾은 것 같다. 삶이든 학위과정이든. 이제서야,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