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페이지 정보

본문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마음속에 자기만의 서로 다른 소원들을 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과 대화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하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대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쌓아 올린 소원의 돌 탑이 원망스럽게도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의 자식이 힘든 길을 걷더라도 외롭지 않게 해 달라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툴툴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다. 그리고 몇 번이고 자신의 돌 탑이 허물어질지언정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자식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우리를 위한 돌 탑 쌓기를 반복하고 계셨다. 그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한들, 셀 수 없이 수 많은 돌 탑은 어느새 쌓여 있었고,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가 보지 못한 다면적인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빈자리에 서서 바라봄으로써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한 딸,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딸의 마음에서 해방을 맞이한 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이력으로 딸은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과 서러움이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그의 꼬리표로 사관학교 입학이 취소된 조카의 아버지인 작은 아버지는 조문을 와 역정을 내고 돌아가고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용히 마무리 될 듯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누구도 그를 기리지 아니할 줄 알았는데, 정치적 성향 차이로 아버지와는 다시는 보지 않을 듯했던 시계 방을 운영하는 박선생이 조문을 온다. 그는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으로 한평생을 군인과 교련 선생을 지냈기에 누구보다 아버지의 대척점에 서 있었지만,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라고 딸에게 말을 건내주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끝까지 남아 계신다. 그들의 만남의 끝은 항상 다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샛노란 노랑 머리를 한 소녀가 들어온다. 그녀가 조문을 온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아닌 자신의 “담배친구”가 되어주셨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서란다. 세월이 갈수록 질긴 마음들은 사라지고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곁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3일간의 그의 장례식장에 사람들은 자꾸만 오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우정이든 미움이든 은혜에 상관 없이 사람들과 질기고 질긴 마음이 정말로 부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함께 딸과 마찬가지로 이념의 굴레에 그를 가둬 둔 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삶의 매 순간들은 항상 인과라는 관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삶은 직선일리 없는데, 무슨 이유로 한 순간으로 하여금 사람을 가둬 두고 규정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 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샀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점점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딸의 아버지에 대한 반성은 통렬하다. 20년간의 수감생활을 있게 하였으며 아버지의 여생을 지배한 빨치산이라는 아버지의 꼬리표가 고작 4년이라는 것을 깨달은 딸은 빨치산의 주 활동지이던 백운산에 모시려던 유골함을 아버지의 삶이 녹아 있는 구례에 뿌림으로써 아버지의 삶을 숙고한다. 빨치산이라는 이념의 울타리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아버지를 가두려 했던 곳이 아닌, 보란 듯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와 사람으로, 이웃으로 사람과 부대끼며 자신에게 씌어진 면류관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지내던 구례에서 그는 그렇게 딸의 손끝에서 마침내 이해받게 되며 진정한 해방을 맞이한다. 삶의 이치일까? “사렘이 오죽하면 글겄냐” 라는 아버지의 말을 한 순간 빨갱이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곁에 있을 때 깨닫지 못하고 모두가 그러하듯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우리는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그렇다. 점이 모여 선이 된다 한들 우리는 그 선이 직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멀리서 보면 굽이지어 있을 것이고 때로는 여러 갈래일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치 아버지의 유골이 중앙교, 반내골, 오거리 슈퍼 골목 구석구석 뿌려지듯이 말이다.
- 이전글얄팍한 행복 대신 단단한 외로움 24.01.17
- 다음글피로 사회 24.01.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