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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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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2,531회 작성일 24-01-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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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는 과거 존재했던 수많은 인류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인류종이며, 라틴어로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지구 생태계 사슬의 가장 위에 위치해 있으며, 개체수도 80억명을 넘어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맹수들처럼 위협적인 이빨, 발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초식동물들처럼 날렵한 몸과 거대한 체격을 갖고있지 않으면서도, 인간은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어 가장 위에 군림할 수 있었을까?? 인류의 길다면 길다 할 수 있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역사에서 일어났던 몇 번의 커다란 사건에서 그 비법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2 개가 바로 '농업 혁명' 과 '과학 혁명' 이다. 이 두 번의 'Level up' 을 통해, 인류는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다.


  과거 원시 시대에 존재했던 우리의 조상들에게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대부분 '생존'을 말했을 것이다. 그 시절 인류들은 지금처럼 자신들을 보호해줄 거대한 사회, 뛰어난 과학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맹수들, 초식동물들과 생존을 경쟁하며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존해나가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농업이 시작되면서 이 모든것이 크게 바뀌게 된다. 농업을 통해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었기에,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직업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인류는 거대한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사회, 국가를 만들게 된다. 따라서 개인으로는 다른 동물들과 생존경쟁이 불가능하던 인간이, 거대한 집단을 통해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농업 혁명에 이어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또 다른 사건은, 바로 과학 혁명이다. 과학은 본래 '무지'에서 출발한다. 본인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한 탐구심을 갖게 되고, 그 호기심과 탐구심이 바로 과학의 기반이다. 근 100년간 인류는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룩했으며 그 전까지만 해도 아직 까지 자연과 경쟁해야만 했던 그들은 결국 과학의 힘을 통해 자연을 어느정도 자신들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자신이 태어난 작은 지역에서 조차 벗어날 수 없던 인류는, 대륙을 넘어 지구를 벗어난 우주까지 진출 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의학이라는 이름의 과학 발달로 신의 섭리로 여겨졌던 죽음마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피엔스에 소개된,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혁명이 있는데 바로 '인지 혁명' 이다. 인류는 언어를 통해 다른 개체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사회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였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하더라도, 150명 이상과는 유의미한 관계를 갖을 수 없다는 것이 유전자 레벨에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지금처럼 거대한 사회, 그리고 국가를 이룰 수 있게 되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 만이 가질 수 있었던, '상상을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처음 인지 혁명과, 이 가상의 실제를 믿을 수 있는 능력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 이 능력이 '혁명' 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만큼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것이 잘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 힘이 인류에게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50명 이상의 관계를 가질 수 없었던 인류는, 인지 혁명을 통해 가상의 신화를 만들어내 하나로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었고, 원래의 한계를 뛰어넘어 거대한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차이가 다른 인류들과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점이었고, 그 결과 우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가상의 실제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돈'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적 약속을 제외하고 보면, 돈은 그저 종이 쪼가리, 혹은 금속 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돈이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상상'하고, 그것을 굳건하게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공통적인 믿음을 공유하며 하나의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현대에는, 150명이라는 유전적 한계를 가졌던 인간이 전세계 80억명의 사람들과 '돈'이라는 숭배대상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돈을 들었지만, 국가를 이루는 법, 윤리, 이데올로기 또한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범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모두가 믿는 사실이고,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약속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자연에 그런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그런 '상상'을 해낸 것이고, 모두가 그것을 믿는것 뿐이다. 도덕과 이데올로기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 우리가 지켜야할 사회적 약속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 모두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이자, 허구의 존재일 뿐이다. 국가는, 이 상상들이 수천 수억명의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에, 깨지지 않도록 지탱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이것이, 과거부터 현대까지 인류 사회를 유지시키고, 인류가 생태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처음 인지 혁명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때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릴때부터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 사회를 이루는 법, 이데올로기, 사회적 약속들이 모두 상상일 뿐이며, 인류가 실제라고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뿐이라니? 유발 하라리의 설명에 따르면,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인류는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또한 국가와 사회라는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것이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가상의 존재일 뿐이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파괴력이 어느정도인지도 말이다. 사회와 국가, 법과 이데올로기, 도덕과 윤리 모두 상상이라는 말이 파격적으로 들릴 수 있고, 그것들을 격하 시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은 분명 인류를 생태계에 정점에 군림하게 만든 힘이고, 약육강식의 세계로부터 우리 개인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내가 믿고 있던 모든것이 상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얘기를 듣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꺼풀 벗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중 많은 갈등이, 자신이 믿는 것 때문에 일어난다. 타인과의 갈등도 보통 그들과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고, 내면의 갈등 또한 자신의 믿음, 혹은 규칙을 깨지 않기 위해 고민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상상에 대한 믿음을 갖고있기 마련이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같은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세상의 갈등중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평소에 나만의 신념 혹은 행동원리를 갖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남들과 충돌하고, 또 혼자서 고민했던 적이 많다. 그것이 나와 다른 상상을 하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나에게는 '실재'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인지 혁명에 관한 얘기를 듣고, 이 모든 것이 상상에 불과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이 모든것이 가상의 존재이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물론,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법, 이데올로기, 도덕과 윤리등의 사회적 약속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 개인들을 보호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반대로, 내가 지금까지 갖고있던 그리 중요하지도 않던 생각과 신념들 때문에 타인과 갈등을 빚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 느낌이 든다. 어차피, 모든것이 허구라면 굳이 남들과 갈등을 빚는 상상을 믿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그저 상상일 뿐인데. 고통과 행복, 기쁨과 슬픔은 분명 실재하는 감정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상상을 지키기 위해 내가 고통을 느낀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기반이 공통된 상상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것이고, 그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면, 그 공통된 가상의 상상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것을 믿는 사람들과 만날 지라도, 내가 먼저 나서서 그들의 상상을 실재라고 얘기해 주고, 같은것을 믿어 준다면 갈등을 일으킬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어차피 있지도 않은 상상일 뿐인데, 그냥 같은 상상을 해주면 뭐 어떤가? 물론, 줏대 없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중요하지도 않은 상상'에 대한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부정해버리는 행동이 타인에게 해가 되고, 나 자신을 갈등하게 만든다면 그 상상에 대한 믿음을 쉬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진짜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허구의 존재를 위한 싸움 때문에 나와 타인이 고통받는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현실에 있지도 않은 상상의 존재 때문에 실재하는 감정,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인 '고통'을 느끼게 된다면 말이다. 어차피 모든것이 상상이자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좀더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상상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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