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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전하는 글 - J. C. 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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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513회 작성일 23-12-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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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전하는 글

J. C. 라일 


  붉은 벽돌로 쌓은 이 층 주택과 마당 건너편에 있던 작은 공방. 마당을 그늘로 덮는 큰 대추나무 한 그루. 넓은 밭을 채우는 수많은 비닐하우스들. 나의 기억 속에 새겨진 외가의 모습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부부의 수고와 땀이 묻은, 아름답고도 정겨운 농가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젊은 시절 손수 여섯 식구가 살 집을 지으셨고, 매년 밭에서 수고함으로 본인의 자식들을 기르셨다. 명절 때마다 외가를 방문할 때면 외할머니께서는 손수 지으신 채소들과 과일들로 여러 요리를 해주셨다. 부엌에서 나는 옥수수 찌는 냄새를 맡으며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여러 가지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종종 인생을 농사와 비유하곤 하셨다. 농사꾼은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장마를 견디며 잡초를 뽑으며, 가을에 열매 맺은 것들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한다. 인생도 농사와 같아서, 유년기에는 인성과 예의를 가꾸고, 청년기에는 배움과 경험을 위해 수고하며, 중년기에는 인생의 성과를 열매 맺고, 노년기에는 다음 세대를 기르고 준비한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본인의 인생 농사의 겨울이 찾아왔고,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의 지식을 전수해주고 싶어하셨다. 인생의 봄을 이제 막 시작했던 유년기의 나에게 외할아버지께서는 늘 청년의 때를 조심하라 경고하셨다. 여름에 찾아오는 장마와 가뭄을 견디지 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처럼, 인생에도 청년의 시기를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근 70년간 농경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급격한 발전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에게 농사는 상당히 낯선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문화가 변하는 것과 상관없이 인생을 농사로 비유하는 외할아버지의 지혜는 변함이 없다. 청년의 때는 인생에서 성장을 겪는 시기이다. 청년기는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책임감의 시기이고, 주어진 성인의 권리를 남용하지 않고 유혹에서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절제의 시기이며,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대비하기 위해 경험과 배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야하는 단련의 시기이다. 혹자는 청년의 때에만 주어진 젊음을 최대한 즐기고 오늘을 살라고 말하지만, 인생의 큰 그림을 바라본다면 청년의 때는 주어진 에너지와 열정을 사용해 미래를 위해 바르게 성장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의 때를 지혜롭게 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J. C. 라일이 청년들에게 강조한 것은 건전한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나무를 키울 때 중요한 일은 가지치기이다. 제단사가 어떤 형태로 가지치기함에 따라 다 자란 나무의 형태가 결정된다. 가지치기하지 않은 나무는 줄기 아래쪽에 가지가 뻗어 나무의 성장이 멈추고, 적절한 가지치기를 단행한 나무는 줄기가 위로 곧게 솟고 넓게 가지를 뻗을 수 있다. 나무가 이미 다 자란 뒤에는 그 형태를 바꾸기가 어렵고, 바꾼다 할지라도 이미 자란 가지들을 잘라버리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인생도 나무와 같아서, 청년의 때에 부적절한 습관을 버리고 바른 습관을 만드는 가지치기를 진행하지 않으면 인생의 나무는 크게 자랄 수가 없다.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년 시절에 겪는 갈등 대부분과 어려움은 잘못된 습관에 의한 것이었다. 대학원에서 석사생들이 많이 혼나는 이유는 연구와 발표하는 데에 잘못된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서이고, 친구들과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긴다면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잘못된 습관이 있어서이다. 신혼부부가 결혼 초에 많이 싸우는 이유도 각자가 살아온 습관을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결국, 청년의 시기는 자신의 습관을 지속해서 점검하고 고치면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자리 잡기 위함이다. 목사님들이 괜히 꾸준히 성경을 읽으라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교수님께서 괜히 꾸준히 논문을 읽으라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젊고 사고가 유연할 때 잡은 건전한 습관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또 J. C. 라일이 강조한 것은 '가치'였다. 경제학에서 가치가 서로 같은 상품과 상품, 또는 상품과 화폐가 교환되는 일을 등가교환이라 부른다. 인생의 법칙은 대부분 등가교환이 성립된다. 가치 있는 일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요구되고, 값싸고 쉽게 얻는 것들은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의미이다. 모든 일에는 성취와 동등한 수준의 고난이 동반된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값진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어려움을 견디는 비결을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 대학원 생활이 어렵고 힘겨운 이유는 그만큼 학위가 값지기 때문이다. 결혼과 육아에 대해 많은 결혼 선배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유도 그만큼 가정을 이루는 일이 값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고난에는 끝이 있다. 고난을 통해 사람은 그 고난을 이겨낼 만큼 성장하고, 끝에는 결국 자신이 이겨낸 고난에 상응하는 성취만이 남아있다. 사람은 지금의 고난이 장차 다가올 영광이 될 것을 기대할 때 그 고난을 인내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손해란 단 한 가지 상황에서 오는데,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는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주인이 노비들에게 각각 10달란트, 5달란트, 1달란트의 돈을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10달란트 받은 자는 장사를 해서 20달란트로 불리고, 5달란트 받은 자도 장사로 돈을 10달란트로 불렸지만 1달란트 받은 자는 그 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땅에 묻어버렸다. 주인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1달란트 받은 노비를 질책하고 그 돈을 다른 노비에게 주었다. 1달란트 받은 노비는 그 돈을 차라리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았어야 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아서, 시도하고 실패하면 교훈이라도 얻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줄어들 뿐이다. 고난이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손해뿐이다. 

  그렇다면 고난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부딪힐 만큼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치'란 사람이 부여할 때 주어진다. 명품이 다른 물건보다 높은 가격으로도 잘 팔리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그 명품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우리는 가치관이라 부른다. 사람은 본인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가치판단을 내린다. 황금만능주의에 심취한 자는 돈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고,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자는 외모가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다. 어리석은 자는 곧 있으면 사라질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영원한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그나마라도 오래가는 일에 우리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재산도, 외모도, 젊음도, 사랑도, 쾌락도, 사람도, 성공도, 인정도, 권력도, 결국 그 사람이 죽으면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영원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청년의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012년 8월, 가을학기 입학으로 카이스트에 오게 된 나의 스무살은 한창 태양 볕이 뜨거운 여름이었다. 학사와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연구자가 되기 위해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내가 경험한 연구자의 여름은 참으로 외롭고 힘든 시기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폭풍우를 거치고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땡볕 같은 피드백을 받으며 스스로 견디고 성장해야 했다. 실험은 참으로 얄궂은 존재인 게,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무능력한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고,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고안해내지 못한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연구자의 여름은 자존감이 깎이는 계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박사가 되는 것에 내가 큰 가치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실험이 잘 안 되고 자책하느라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나를 지으시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세상에 어떤 역사를 쓰실지 상상하였다. 나의 연구가 전능자가 부여한 숭고한 사명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될 때, 그 고난이 아무리 크더라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실의 최고참이 된 이후로, 후배들이 본인의 연구로 고민하고 밤새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의 마음과 함께 그들의 마음이 공감된다. 모든 후배의 상황과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금 보내고 있는 대학원 생활이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 말해주고 싶다. 실험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은 성장할 것이고, 고난의 산을 넘는 순간 그만큼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의 대학원 생활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면, 스스로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진정한 가치이고 영원한 가치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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