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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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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382회 작성일 23-12-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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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어려서부터 왜인지 나는 잘 사는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해왔었다. 한번 사는 인생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어린 나이에 모종의 이유로 생겨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나름의 번듯한 인생 계획을 세우려 애썼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잘 산다는 것’을 정의를 내리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해마다 저마다 옳다고 여기는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책과 유튜브 등의 콘텐츠들이 쏟아지는데 저마다 중요시 여기는 게 다르기에 잘 사는 삶에 대한 생각 역시 천차만별이다. 잘 사는 삶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내가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느냐였다. 그러나 서른이 다되는 지금도 잘 모르는 걸 고작 10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대로 돈, 명예, 권력을 좇는 것도 쉬운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동하는 느낌도 들지 않고 무엇보다 대놓고 세속적인 가치를 좇기로 스스로 결심하는 것도 영 모양이 빠진다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나한테 꼭 맞는 정답이 있을 거라는 믿었기에 그 때서부터 인생의 의미, 삶의 목표 같은 것들에 대해 유난히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심리가 반영된 탓인지 내가 아니라 자꾸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줄거리에 인물의 삶이 녹아 있는 것들을 주로 보아왔다. 이렇게라도 간접적인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나도 어느 순간 멋진 인생관을 찾게 될 거라고 은연 중에 생각해서였으나, 사실 그렇게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도 의미 부여를 위한 가식적인 의미, 목표 설정을 위한 영혼없는 목표가 세워졌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해왔다. 평소에는 우유부단한 내가 조건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언뜻 보기에는 멀찍이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생 경로를 그리 어렵지 않게 선택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달콤한 유혹이 굉장히 많았음에도 끝까지 버틴 것에는 그 고난의 과정에서 바라던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커서였을지 모른다. 너는 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왔냐는 질문에 매번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은 마음에 ‘재미도 없고 일도 힘들고, 커리어적으로 별로여서’ 라고 얼버무리곤 했지만, 사실 나 자신조차도 헷갈려했던 진짜 이유는 그러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학위과정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내게 그 때의 선택이 큰 기회비용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 즉 그 희망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수 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느낀다. 혹자는 이 글이 예상 독자가 정해진 공개적인 글인만큼이나 애초에 답이 정해진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고, 혹은 기회비용을 외면하기 위한 자기합리화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나는 그렇게 느낀다.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애당초 감수하고 왔던 부분이라 배제하고 나면 남은 것은 이 곳에서의 시간이 다른 곳에서의 시간과 차별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이다.

 사실 석사학위는 누구나 알듯 학위로서의 가치는 참 애매한 부분이 많다. 2년이라는 시간은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느 한 학문 분야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전문가가 되기에는 상대적으로 촉박한 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석사학위는 해당 분야에서 주도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경험해 봄으로써 연구를 본격적으로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증해주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지식을 흡수하던 학부과정 혹은 저년차의 회사원과는 달리, 학위 과정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책과 논문을 뒤져가며 해결방법을 강구하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헤쳐나가고, 그 끝에 얻은 데이터를 잘 정리하여 남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일련의 장기 프로젝트를 이 나이에 이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대학원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른 문제해결능력은 비단 전자공학 중 세부 분야인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반도체라는 분야는 그저 연구 대상을 위한 소재였을 뿐, 살아간다는 자체는 제멋대로인 세상 속에서 고뇌하고, 참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반복될 것이기에 연구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길러진 능력들은 고스란히 앞으로의 삶에도 녹아들 것이다. 더해서 그 과정을 정제하여 그림으로, 도표로, 언어로 잘 표현하여 소통하고 피드백을 통해 더 성장해 나가는 과정 역시도 일생 동안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그러한 연습을 현대 과학 기술의 정수인 반도체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땀 흘려 기른 능력과 인내는 앞으로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겨우 석사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학위이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은 그 어디서도 쉬이 경험하기 힘든 것임은 분명하다.


 앞서 말한 것들은 사실 학위 기간동안 경험하고 기를 수 있었던 능력적인 면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큰 소득은 앞서 말한 내가 바라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답이다. 결론적으로 그 답은 학위 과정동안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식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얼마 전에 본 디즈니 영화 ‘소울’은 이러한 내가 깨달은 바와 너무나 일맥상통한 바를 전한다. 영화 ‘소울’은 주인공 ‘조 가드너’의 삶의 태도가 바뀌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나처럼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그가 믿었던 삶의 목적은 멋진 재즈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갖은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원하던 재즈 클럽에 들어가게 되는 기회를 얻고, 마침내 관객 앞에서 훌륭한 연주를 한다. 하지만 연주가 끝난 후 이전과 크게 바뀐 것도 없고 오히려 공허함을 느낀다. 그 때, 재즈 클럽의 주인은 조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것을 찾는데요.”

“바다? 여기가 바다야.”

“여기가요?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구요!”


 물은 지금 겪는 순간의 삶, 바다는 관념적인 삶의 의미와 목표를 뜻한다. 위의 이야기처럼 내가 처음의 답 대신에 깨달은 것은 이제는 그러한 의미를 찾는 여정, 그러니까 바다를 찾는 일에 더 이상은 그리 목 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생긴 인생 계획에 대한 강박은 자꾸 현재 순간을 희생해서 미래에 투자한다는 심리를 갖도록 만들었다. 희생했던 만큼 미래에 보상이 따라야한다고 여기고, 보상을 자꾸 미룰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올라가고, 기대에 상응하는 더 좋은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삶의 의미나 목적에 집착하는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그 순환 고리로서 하나였던 학위 과정은 오히려 그 고리를 깨는 계기가 되었다. 학위 과정은 사실 무수한 실패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기약없는 연속된 실패 앞에서 악으로 버텨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지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 희망이 배신했을 때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생각하는 학위 과정에서 가져야하는 자세는 마주한 현실을 굉장히 차갑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하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학위과정 중 잠시나마 실천해봄으로써 인생 또한 그런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를 억지로 정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 마냥 스스로를 세뇌하여 현재를 갈아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삶의 부조리가 가득한 현실에서 그렇게 희망을 가지며 버티는 방식은 과정에서도 자신을 지치게 만들 수 밖에 없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해도 이내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처한 현실과 나 자신 그대로를 냉정히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 그리고 그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석사과정이라는 짧지만 긴 여정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내게 학위 과정은 단순히 계산되는 기회비용 이상의 가치가 있다. 물론 수치로 계산되거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느끼는 것이기에 그 가치는 현재 시점에서는 주관적이고 모호할 수 있다. 결승선에 다다르기 무섭게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 대학원에서 지난 2년 동안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선순환을 만들기를, 그리고 훗날 돌이켜봤을 때 그것들이 지난 삶의 자취로 드러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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