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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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소설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의 좌석에서, 천장 스피커에서 나오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은 37살의 와타나베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된다. 노래는 와타나베를 격렬히 흔들어 놓으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도쿄의 대학 기숙사에서 살며 연극과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그는 고전소설을 즐겨 읽고 음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어울렸으나, 기즈키의 자살 이후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나오코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그녀의 언니 역시 자살했다는 사실을 와타나베에게 털어놓는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녀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는 나오코가 입원한 산속 요양원 '아미사'를 방문해 오랜만에 재회하며, 그곳에서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는 매혹적인 중년 여성 레이코를 만난다. 레이코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
소설 후반부에서 나오코의 자살은 기즈키 이후에 와타나베에게 두 번째 상실을 안겨준다. 레이코와 함께 나오코의 장례식을 회상하며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하고,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삶을 계속 살아가며 행복을 찾을 것을 조언한 후 떠난다.
소설은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마무리된다.
너 지금 어디야?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너 지금 어디에 있어?"라고 묻지만, 와타나베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는 그의 현재 상황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이 책을 마무리했을 때의 느낀 충격을,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 표현하긴 어려울 것 같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1인칭 시점에서 덤덤하게 쓰인 문체는 주인공의 감정에 더 이입하게 만들어 준다. 소설에는 성적인 표현이 거침없이 드러나며 ‘죽음’을 매개로 와타나베 주위 여러 가지 인간관계의 상실을 표현하였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침없고 섬세한 필체는 글에 더욱 몰두하게 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소설 속 와타나베의 이야기에선 ‘죽음’을 매개로 한 여러 가지 인간관계의 상실이 나온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고, 이를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나오코는 죽음을 삶의 대극이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저 대극너머로의 길을 택한다.
그녀는 와타나베의 ‘순수한 사랑’이지만, 끝내 와타나베는 그와 이어지지 못한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의 일상에서 함께하고 마지막에 와타나베가 찾아가는 현실적 사랑으로 투영된다.
너 지금 어디야?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순수함은 죽고, 레이코마저 떠나 방향성도 찾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죽음에 의한 상실, 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 존재의 상실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을까. 순수성을 가진 개인과 순수성을 상실한 현실의 대립을 와타나베의 삶을 중심으로 떠올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의 내면 속에는 순수성을 지키려는 자아가 있다. 순수성은 내 삶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지만, 이를 지켜내는 것에는 매우 많은 절제와 인내, 자기 극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순수성을 지켜내기 힘들다.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내리고, 안주하게 한다.
순수성과 현실의 대립이 일어나면 사람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내면의 고유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현실에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 사이의 괴리감은 괴로움을 느끼게 한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다 이렇게 살아.’라 합리화하며 순수함을 내던지고 자아를 상실한다.
그렇다면 미도리의 질문에 나는 지금 대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적절한 사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쟁의 구성 요소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환경에 의해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현실의 직업이 바뀌거나 가족이 생겨 책임의 분배가 달라질 수 있고, 나의 순수성과 자아 역시 변할 수 있다. 안정적이고도 영원한 자아는 없고, 이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가치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창조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나의 자아는 무엇인지, 지금 나의 가치와 책임은 어떻게 분배되어 있는지. 순수성을 잃지 않고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어떤 매개체가 필요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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