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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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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2,509회 작성일 23-12-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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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風前燈火)라는 말이 있다.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작은 등불은 흔들리며, 언제든 사그라질 듯 매 순간이 위태롭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등불은 역사의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 앞에서 때때로, 우리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어 나갔다.

약 44년 전,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불법적인 쿠데타를 일으켰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은 권력 공백을 초래하고,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12월 8일에 긴급조치를 해제함으로써, 대한민국에 민주화와 자유의 새로운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군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계엄 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은 하나회의 수장인 전두환 소장을 권력에서 격리하기 위해 그를 동해안 경비 사령관으로 전보시키려 하였다. 또한 하나회(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학군사관 출신 장군들로 요직을 채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결정에 반발한 전두환 소장은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공수여단을 동원하여 계엄사령부를 불법적으로 점령했고, 정승화 대장 및 그를 지지하는 최고위급 군 지휘부를 체포하였다. 이로써 군 내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반란군으로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신군부"를 구축하였다. 1980년 5월 17일, 이른바 "5.17 내란"을 통해 최규하 대통령을 실질적인 권력에서 배제했고, 이후 약 1년 후에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군사 독재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우리는 권력이라는 주체가 자유를 어떤 식으로 억압하는지 알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 태생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테라가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체코 슬로바키아의 당시 정치적 혼란과 개인적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탐구하며,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체코의 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1968년 프라하의 봄과 그에 따른 소련의 군사적 개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군이 체코에 왔을 때, 그들은 해방자였지만, 이후 마치 점령군처럼 변해가며 사람들의 자유사상을 억압하게 된다. 당시 소련 서기장 이였던 스탈린은 공산주의자들과 친 소련파 인물들로 구성된 어용 정당을 만들어 권력을 쟁취하였으며, 권력과 사회에서 반 스탈린주의, 반공산주의자들을 축출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과 문학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었다.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프라하의 봄”이 드리울 찰나, 소련군은 전차, 전투기를 앞세워 프라하 시내로 무력 진압을 시도하였으며, 결국 1989년, 체코 내 민주화 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군사독재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불안정한 시대적 배경 아래서, 작가는 인간들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가벼움”과, “무거운” 시대상에 휩쓸리는 개인 각각의 감정들을 묘사한다. 인물들은 육체적 사랑 및 이끌림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사료한다. 결혼과 이혼, 육체적 관계 및 정신적인 교감. 그러한 가벼움으로 시작된 인간들의 관계는, 중반 이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각각의 개인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시대상의 “무거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키치”는 이러한 위선적 상황을 묘사한다. 키치(kitch)는 독일어로써, 싸구려 모조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모조품을 통해 인간과 체재의 이면 성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으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위선을 보인다. 이상적인 사회를 표방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개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위선을 보인다.

마치, “잘살아보세”를 표방하며, 혼란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그 사람의 말과 같이.

작가는 마지막으로, 주인공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다. 소설 안에서, 체재의 위선인 “키치”에 저항한 결과는 모두 죽음 이였다. 마치 프라하의 봄이 실패로 끝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밤이 길어도 결구 새벽이 밝아오는 것처럼, 그들 자신도 “키치”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는 것을. 그 어두움과 위선 속에서 피어난 수많은 외침들과 눈물들은, 마침내 자유의 빛을 품을 새벽을 맞이하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글을 빌어, 프라하와 서울의 민주화의 등불을 지켜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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