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사실은 - 몰디브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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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을 떠나요
원래는 박사 proposal 을 하기 전까지는 해외 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적극적 지지 그리고 기타 여러 상황으로 인해 12월 말에 전 여친 현 와이프(?)님을 모시고 잠시 생애 첫 몰디브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몰디브 2인 왕복 비행기를 합계 190만원 남짓에 구하고 뿌듯해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평화롭게 측정방에서 소자가 제발 동작하기를 기도하고 있던 와중에 웬 메일 알람이 울렸다.
Dear Passenger,
SriLankan Airlines wishes to apologize for the cancellation of flight UL471/23DEC ICN CMB. Please contact your issuing agent for more information.
Sincerely,
SriLankan Airlines Team
*This Email has been auto generated. Please do not reply.
내가 지금 잘 못 본거 맞나? 내가 그새 영어 독해력도 떨어진 거 아니지? 5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아무런 대안도 없이 메일 하나만 달랑 보내다니. 그래놓고 뭐? “이 메일은 자동으로 생성되었으니 답장하지 말아”라고? IEEE TED 저널 리뷰어들도 이거보단 친절하겠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전화해서 찾아낸 2배 가량 비싼 비행기표를 들이밀어 교환을 요청하자 스리랑카 한국 지사 측에서 처리해주었다. 비행기 취소 관련이라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바로 울상이 된 듯한 말투는 덤이다. 하긴, 얼마나 시달렸겠어. 한국 지사 직원들은 뭔 죄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것일 텐데.
2.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곳, 몰디브
몰디브는 참 특이한 국가다.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1,19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중 몰디브 현지인이 살고 있는 200여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리조트 하나가 섬 하나를 통째로 독점하는 독특한 구조다. 당연하게도 이 나라는 주로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을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수도인 말레 또한 옛날 군주제 역사에서 술탄이 궁전을 짓고 다스리던 곳이라고 한다.
몰디브 여행이라고 하면 리조트에 박힌 채 푹 쉬고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과 함께 평화롭게 예쁜 바다를 구경했을 거 같은데, 그런 것 치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제목인 듯 하다. 그러나 몰디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신혼여행지나 지상 최후의 낙원 등의 수식어 뒤에 종종 보이는 문구가 있다. “2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국가”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우선, 몰디브 공항에 들어서면 가방 검사가 유난히 철저하다. 이유는 일반적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히 가지고 다니며 누릴 수 있는 물품을 압수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으로 술과 성경책 등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공항에서 술을 자주 압수당한다나. 몰디브 현지인들은 이슬람 경전에서 금지하는 술은 당연히 구매 및 섭취할 수 없으며, 사방이 바다이지만 일반적인 수영복도 입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KAIST 아름관 정문 앞에서 수없이 행해지고 있을 각종 애정행각(?) 역시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런데 어떻게 몰디브가 “모히또 한 잔”과 함께 신혼여행의 메카가 되었는가 하면, 리조트는 일종의 ‘치외법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조트는 관광객들에게 술을 파는 것이 허용된다. 리조트 내 바텐더가 말해주기를, COVID-19 이후 신혼여행으로 몰디브를 찾는 아시아 여행객은 크게 감소했으며 대신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스노클링, 다이빙 등 수상 레저를 즐기기 위한 여행객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들은 기독교 문화권이므로 이들에게 맞춰주어야 할 터. 내가 방문했던 주에는 하필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었는데, 직원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러주면서 방문객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주었다. 현지인들이 사는 섬에서는 성경이나 기타 기독교적 색채가 있는 물품 소지조차도 금지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긴, 관광업이 전체 GDP의 40%를 차지하니,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래서 몰디브를 표현하는 말로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나라”라는 표현이 생겨 났나 보다.
3. 한국인이 신기한가요?
내가 찾아낸 리조트는 한국인들은, 아니 아시아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리조트였던 듯 하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1시간 가량 달려서 리조트에 도착하니 -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포인트 하나. 몰디브 공항에 도착하면 리조트에서 스피드보트나 수상비행기를 통해 안내해준다. 만약 자신이 특히 멀미가 심하다 하는 분들은 2~3배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수상비행기를 이용하시기 바란다. 나는 바다를 매우 좋아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롤러코스터마냥 요동치는 승차감에 울렁임을 느꼈는데, 멀미가 심한 사람은 1시간 탑승하고 나면 세상이 빙빙 돌 것이다. – 웰컴 드링크를 받은 자리에서 아시아인은 우리뿐이었다. 직원들도 신기해하길래 “원래 한국인들 몰디브 많이 오지 않았나요?” 하고 물으니 이 리조트에는 한국인들은 거의 오지 않는 거 같다고 했다. 몰디브를 오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여행사를 끼고 예약을 하는데 여행사에서 거의 찾지 않는 리조트인 듯 했다.
몰디브 하면 모히또 말고 떠오르는 것은 바로 바다가 아닐까. 몰디브는 천혜의 해양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서 깊은 바다까지 나가보았다. 바닷 속의 그 장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굳이 돈을 들여 고프로 (수중 카메라)를 빌려야 한다는 와이프의 선견지명에 감사하였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안녕 나는 상어라고 해~” 라고 말하듯이 상어가 나타났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순간 호흡 장비에 물이 들어왔다. 그래도 어디 책에서 본건 있어서 – 천천히 수영하고 최대한 빨리 물 속에서 나와라. 바둥거리게 되면 오히려 상어를 자극하게 된다. – 발차기만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바로 직원에게 달려갔다. 상어가 나타났는데 저거 괜찮은 거냐, 위험한거 아니냐 하고.
직원은 살짝 웃으며 뜬금없이 “Where are you from?” 하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딱 봐도 상어 처음 보는 분인거 같아서 물어봤다. 여기서 해양 스포츠 즐기는 분들은 상어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한다나. 그리고 여기 상어는 우리가 아는 그런 난폭한 상어가 아니라서,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도망간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주먹으로 아가미를 때리며 요즘 세대 말로 '현피뜨는' 짓만 안하면 괜찮다고. 다행이면서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4. 우리가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 사실은
한국인은 당연히 없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한국이 언급되었긴 했다. 와이프와 모히또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문득 어디서 왔냐는 바텐더의 물음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첫 마디가 “I envy you.” 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바텐더를 꿈꾸고 있지만, 술을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국가에서 바텐더로서 대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리조트에서 관광객에게 술을 팔기 위해 배울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그래서 몇 년 뒤엔 자신도 한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것은 립서비스일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술을 마시면 잡혀가는 나라에서 바텐더를 꿈꾸는 것 보단 한국이든 어디든 가는 것이 낫겠지. 문득 퇴근 후 맥주 한 캔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한국이 고마워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게 되는 하루였다. 덕분에 기독교는 - 교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 적어도 술을 금지하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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