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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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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608회 작성일 24-01-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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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슈테판 클라인 -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지적이라고 믿어오는 우리 인간은, 우연히 지구에 떨어진 운석이 아니었다면 공룡의 등쌀에 밀려 골골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단세포 생물들이 모여 살기로 결정한 그 순간, 그리고 먼 과거 아마도 바다의 해면체 유충이 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고 육지로 올라오려고 시도한 그 순간 등등, 우리는 우연이 중첩의 중첩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이를 확률적으로 계산해보면 지나치게 말도 안되는 우연과 확률이라고 생각될 테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모든 우연이 겹쳐 생겨난 희박한 확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은 우연을 체념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질서'와 '규칙'은 영원한 천체의 운행, 즉 하늘에서만 드러날 뿐, 땅에서는 신들의 의도가 개입되기에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에서의 산물들은 각각 규칙화된 내재된 충동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르네상스 세대 도박이 사교계 문화로 자리 잡은 시기에 우연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수학자들의 노력과 함께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땅과 하늘의 운동 법칙이 똑같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탄생한 뉴턴의 고전 역학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뉴턴 역학의 세계에서는 우주의 모든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예언할 수 있다는 소위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악마도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불가능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초기 조건에 대해 어느정도 근사치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연의 힘을 깨뜨려 보고자 나선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도인 파머라는 우주학자다. 파머는 몸속에 숨길 수 있는 초소형 컴퓨터로 룰렛과 구슬의 속도를 측정해 구슬의 최종위치를 계산함으로써 카지노에서 10달러로 14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슬의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예를 들어, 6cm/s인 구슬의 속도를 6.5cm/s라고 예측한다면 그 오차율은 매우 적지만, 구슬이 10초 동안 굴러갈 경우 5cm, 30초 동안 굴러간다면 그 오차는 15cm로, 한 칸에 5cm 정도 하는 룰렛에서 완전히 다른 칸에 정착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예측 실패율은 지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도박판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예측하는 것은 더욱 복잡해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예측이 스스로 반응해 피드백 고리를 형성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허나 이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한다 한들, 이것이 정확히 흘러가기엔 쉽지 않다. 우리는 매번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일어나는 일들이 만연하는 우연의 바다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인생의 확률보다 덜 희박한 로또에 당첨되거나, 유명인을 마주치는 그런 순간을 보고 운이 좋다고 말하곤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뭔가가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 뇌는 우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연에 이야기를 입혀 필연으로 만드는 것을 택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자신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라고 믿었다. 또 우리 인간은 우연한 진화의 산물일 뿐인데 우린 우리의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완전한 모습이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 이처럼 우린 왜 이렇게 우연을 싫어하는 것일까. 우리 뇌는 '우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은 생존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형을 떠나 예측하기 힘든 지형과 기후를 마주했을 때, 자신들이 어떻게든 예측하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생존방법을 도모했다. 덕분에 우리가 대한민국, 대전에서 이렇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예측하지 못하는 일은 막대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었다. 생사의 위협에서 벗어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단지 통제가 가능하다는 환상만 있어도 스트레스는 급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 때, 상대방이 특정전략을 쓸 것이라고 미리 귀띔을 해주면, 승률은 변함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통제의 환상 덕분에 게임에 더 재밌게 몰입하기도 한다. 또 사람들은 미리 결과가 나와있는 주사위의 숫자를 맞추는 것보다 새로 던지는 주사위의 숫자를 추측할 때 도박에서 더 과감해지게 된다. 우린 은연 중에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능력은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뇌는 '부정성 편향' 때문에 우리에게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나 신호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쉽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이나,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왜 자신만 살고 남들은 죽었는지 실체가 없는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게 되고, 그 이유는 종종 죄책감과 우울감으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또한, 예기치 못한 우연한 행운을 경험할 땐 해마 활동이 감소해 쉽게 잊는 반면, 우연한 불행은 오래도록 곱씹는 경향이 있다. 즉, 뇌가 세상의 많은 우연한 일들을 이유를 만들어 해석하려고 할 때, 더 불행해질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연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적어도 부정적인 영향은 막을 뿐 아니라 행운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선조들이 사냥감을 가장 잘 수확하는 방법은 동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외부 자극 없이는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냉전시대 미국 잠수함 지휘관의 필수 아이템은 주사위였다고 한다. 주사위를 굴려 랜덤하게 다음 이동 방향을 결정하면 소련군의 예측을 피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신들의 수가 상대방에게 간파당하면 상대방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게임 이론이나,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컴퓨터의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에 가장 좋은 대응방법은 상대방의 과거 선택에 따라 내 대응을 달리 하되, 내 대응 방법에 '우연한 요소'를 심어주는 것이다. 뇌가 예측된 일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듯이, 사람들은 예측이 쉽고 만만한 사람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연은 우리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준다. 하지만, 우연을 벗어나 항상 예측된 상황만을 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융통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한다. 독일은 예측 가능성과 안전에 대한 엄청난 집착으로 모든 것을 표준과 규칙대로 처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계단의 높이가 규정보다 조금만 높아져도 표준에 적응됐던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넘어진다고 한다. 우리의 선택 중 대부분은 한정된 정보 속에서 직감과 우연에 기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우연과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사람은 조금만 다른 계단을 걸어도 비틀거리는 독일인처럼 점점 무능력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조차 최소한의 예측은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예측하려고 하면 '과적합' 현상이 일어나 하던 일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우연과 필연 사이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  


 정리하자면, 우연은 우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끄는 기회이자 우리 삶에 창의성, 신선함을 주는 요소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것을 배우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선 우연을 인정하고 실수를 저지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 겉보기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나 생각들이 우연의 힘을 통해 행운이나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 우연의 힘을 이용해보고자 한다.


 내가 대학원에 온 것도 내가 목표로 한 인생의 계획대로 되도록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웬걸. 내가 예측하지 못한, 소위 우연치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위에서 언급한 부정적 편향이 발생하며 많이 당황하곤 했다. 실험결과에서든 내 사생활에서든 우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다 내 잘못이라고 받아들이고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자세가 꼭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에 나는. 우연이라는 파도가 요동치는 이 세상에서 내 통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의미부여하고 파도를 거스르기 보다는, 우연이라는 파도에 탑승하며 예측되지 않은 결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자 한다. 물론 내가 챙겨야 하는 '필연'은 챙기면서 말이다. 그럼 매 순간순간 새롭게 마주하는 상황 자체에 흥미를 느끼며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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