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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하품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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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547회 작성일 24-02-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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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하품할 수 있는 ”

- 피에르 쌍소 著, 강주헌 옮김 「느리게 산다는 것」 을 읽고 -

 

 오늘 하루는 이 정도만 채우고 끝났구나.

 

 ‘하루’라는 시간은 늘 부드러운 이어짐이 아닌, 내다보기와 돌아보기 사이의 어긋남에 가까웠다. 오늘을 시작하며 내다본 계획들은 차곡차곡 쌓여 조금의 틈도 없이 하루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 다다르고 다시 돌아본 오늘은 여기저기 비어있고 갈라지고 가끔은 무너지기까지 하는 모습일 때가 많다. 나태함에, 근면했더라도 외력(外力)에, 모든 것이 온건(穩健)했더라도 온전(穩全)하지 못한 결과에. 그렇게 하루는 쉬이 어긋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해부학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머리는 가슴의 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머리가 나름 공들여 쌓다가 무너진 돌 더미는 그대로 가슴에 주저앉아 버리니. 오늘 하루는 이 정도만 채우고 끝났구나. 다 채우지 못한 공허함의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크기의 배가 되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짐이 된다.

 

 그런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빠르게 살아간다. 생각을 빠르게, 결정을 빠르게, 행동을 빠르게 그리고 다시 그다음 생각을 빠르게. 그렇게 완성된 현대 사회가 이제는 우리에게 느리고 천천히 – 여유롭게 – 살아가는 역설(逆說)적인 삶을 역설(力說)한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철학자이자 종교 사상가였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이 이미 오래전에 말했듯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에 차분히 앉아 휴식을 취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는 말처럼 각종 불안감과 부담감, 부당함과 불리함에 맞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좀 쉬어갈 줄 아는 삶은 어느새 쉽게 취할 수 없으나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미덕이 되어 버렸다.

 

 저자 피에르 쌍소 (Pierre Sansot) 가 그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에서 말하기를, 결국 즐겁게 권태로운 삶을 위해 모데라토 칸타빌레 – 절제를 넘어서 느리고 우아하게  살아가기를 강조한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느리고 우아하게 라니. 권태처럼 마냥 나쁘기만 하지는 않더라도 느림 또한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느리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이유는 충분할까. 피에르 쌍소는 그 이유를 기도하고, 느긋하게 남의 말을 듣고, 묵상하고 몽상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권태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권태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자신의 무한함에 비추어 볼 때 일상의 삶이 저급하고 가소롭다고 생각하는 이의 권태이기 때문에 멀리해야 한다. 이러한 권태는 결국 무가치에 맞닿은 생각에 의해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허무감에 짓눌리기 마련이다.

반면 그가 제안하는 권태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권태, 화급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루고 행복감에 젖어 즐겁게 하품할 수 있는(나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권태를 권한다. 앞선 두 가지 권태 사이에서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되, 어떠한 편견도 없이 허용된 자유에 기반한 권태를 즐기는 것 – 절제된 권태를 지향하자고 말한다.

 

 이렇게 이상적인 권태를 가지고 다시 돌아오면, 나의 하루에서 ‘돌아보기’의 부담은 조금 가벼워진다. 빽빽이 줄지어 있는 오늘의 일들 사이사이에 비록 커다란 틈이 있었더라도 그 순간을 쉬어가며 만끽한 절제된 권태는 하루를 돌아보는 순간에 나에게 줄 수 있는 위로이자 고개를 돌려 다시 내일을 내다볼 수 있는 지시등이 될 수 있다. 빠르거나 혹은 느리거나. 그 정도의 차별을 떠나서 우선은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마침내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나를 내버려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어떤 이의 하루가 저물어 갈 때, 잠시 기대어 즐겁게 하품을 해 본다. 천천히 저무는 태양, 서서히 물드는 하늘, 하나씩 끝내는 계획들 그리고 조금씩 모이는 피로감. 하지만 절제된 권태가 충분했던 그 누군가의 오늘에, 더 이상 쌓이는 공허함과 그보다 더 크게 짓누르는 짐은 없다. 빠르게 지나갔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는 상투적인 위안보다, 그 어떠한 기준점 없이 스스로 필요에 의해 느리게 살아왔다는 결단이 앞으로 살아갈 많은 시간들을 더 풍족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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