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끝없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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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 이스라엘 간 무력충돌이 다시금 발발했다. 이전부터도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권의 압박은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매복하고, 매복 이후 무차별적인 공격을 지속한 것은 50년간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사실 국제사회가 받은 충격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평소 세상 소식은 챙겨보는 편이었던 나로선, 제작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여느 영토전쟁과 같이 중동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6년의 인생을 산 나로선 찾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길고 긴 갈등이었음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이에, 현재까지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내가 조사한 내용들을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사건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이전까지 자신들의 나라 없이 여러 나라에서 차별과 학대를 받던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유럽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자는 민족주의가 확산했었다. 그리고 1897년, 스위스 바젤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도록 하자는 결의가 나온 후, 수많은 유대인이 이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 후, 1917년 영국은 벨푸어 선언과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등을 선언하며 유대인 국가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하지만, 기존에 이 영토에 살아오던 아랍인들로서는 반가울 리가 없을 터.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유입에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한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유대인 간의 소규모 충돌이 계속되었다. 이에 UN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내놓았는데, 아랍인들은 이에 완강한 반대의사를 보인 반면, 유대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들은 유대인들의 나라 건국에 반대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의 주변 아랍국들과 3차에 걸친 중동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세 차례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오히려 기존 영토보다 더욱 확장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이 추가로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며 주변국들과 평화조약을 맺게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랍연맹과 UN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 정부로 선언하고, 국가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며 팔레스타인이 세워진다.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영토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기도 하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국가 간 갈등으로 격상된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설립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수많은 테러를 자행하나, 이스라엘 군이 이를 많이 억제하였고, 한계를 느낀 팔레스타인은 평화적 외교정책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 이후 두 나라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는 대신, 서안지구,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획득한다는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평화협정을 맺어도 기존 두 나라 내 강경 보수파의 입김은 지속되었다. 이스라엘 내 강경파가 팔레스타인들을 과잉 진압하자 팔레스타인도 여러 민중봉기를 일으키게 되고, 이에 결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자국 영토와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설치한다. 이때 세워진 장벽을 비롯해, 아이언 돔과 같은 최첨단 방어 시스템이 구축된 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더욱 강하게 제한하자,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존 온건파 파타당의 평화 외교가 실패했다고 느낀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반이스라엘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마스를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기존 정권이 하마스 정부를 거부하면서 내전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지배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서로 다른 정책을 펼치며 이스라엘과의 외교를 이어나가게 된다.
하마스가 점령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이어왔으나, 그들의 도발은 번번히 막혔고 되려 이스라엘의 강한 제재만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달리 이스라엘은 주변국과의 수교를 차근차근 맺고 있었다. 과거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했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스라엘과 외교협정을 맺자, 자신들의 입지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느낀 하마스는 사실상 지금이 마지막 공격이라고 생각했고, 이전보단 훨씬 더 치밀한 무력도발을 준비하였다. 테러를 위해 수개월 간 무기를 매복하고, 테러 전 이스라엘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며 순식간에 아이언 월, 아이언 돔 내 로켓감지센서를 폭파시키며 영토를 침공하였다. 이것이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전쟁의 시작점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들의 입장이 있다. 어떤 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사건에 해당되지 않는 제 3자들은, 사건 당사자들의 두 의견을 모두 들어보고 좀 더 억울하고 입장의 편을 들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편 당사자의 입장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나라 간 갈등의 역사를 되짚어보니 팔레스타인 인들의 억울함도 조금씩 이해는 된다. 여러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한들, 자신들의 영토라고 굳게 믿어온 아랍인들의 땅에, 갑자기 낯선 인종이 들어와 자신들의 영토마저 빼앗았다고 한다면 이 당시 주민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NIMBY’현상이 국가적 수준으로 커졌다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방식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단언하고, 이 테러를 주도한 이들은 아주 고통스런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도 가자지구에 무력 대응을 하고 있는데, 결국 이런 복수의 과정이 무력 대 무력이라는 구도가 최선이라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사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양 국가에 소속된 군인들도 어찌보면 양국의 선량한 국민이기도 하다. 더욱 과장하자면, 이들은 국가 지도자층의 욕심에 의해 희생되는게 당연시되는 국민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한들,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더 이상 희생되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빨리 이 갈등이 멈추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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