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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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최근 들어 인생이란 무엇일까하는 고찰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둘러보면 대다수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은 단순히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포괄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다. 기쁨, 희망, 뿌듯함, 포만감, 평온함, 유대감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충족되어 만족하고 여유로운 것이 행복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치자면 삶에서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하거나, 그저 그런 순간을 만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행복으로, 그리고 행복을 삶의 기본값으로 두고 살다보면 어느덧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한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싶은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지 운이 없어서 생겨나는 일들, 가령 실연, 불치병, 불의의 사고들이 삶에는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겪은 인간은 행복하지 않으니 살 이유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또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감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럼 그동안 기약없이 보내는 세월들은 불행으로 치부되며 끊임없이 인내하며 고통스럽게 보내야만 할까. 이러한 의문들은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철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해오던 종류의 것이다. ‘시지프 신화’는 알베르 카뮈가 내 나이쯤일 때 썼던 책으로 이러한 나의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는 책이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우리는 언젠가 사라진다.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소위 재수없는 일들이 계속 들이닥쳐 삶을 뒤흔들고, 그 끝에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책의 첫 구절이 시작한다. 카뮈는 ‘부조리’ 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부조리란 비합리적인 세계와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되길 바라는 인간의 이성 사이에서 충돌하는 의식과 감정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한 필연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계 자체는 합리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그 명확함에 대한 호소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메아리 친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에 똑같이 관련된다.”
부조리는 그 자체로 삶에 고통을 주기에 사람들은 이를 없애고 싶어한다. 이를 없애는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부조리는 세계와 이성 사이의 충돌에 의해 생겨나므로, 둘 중에 하나를 제거하면 부조리가 생겨날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지금 발 딛고 있는 세계를 없애거나, 지금 고뇌하고 있는 이성을 없애면 된다. 세계를 없애는 방법은 육체적 자살이고, 이성을 없애는 방법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멈추고 맹목적인 희망만을 갖는 것, 즉 철학적 자살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두 방법을 통해 부조리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는 진리를 바라보지 않고 도망가는 것일 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부조리라는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이 쳇바퀴같이 반복해서 굴러가거나, 아니면 예상치 못한 나쁜 일이 불쑥 솟아오르고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 걸까. 죽어서도 안되고, 언젠가는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서도 안된다면 남은 방법은 정면으로 부조리에 맞서는 방법 뿐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 부조리가 만연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삶에 끊임없이 반항하며 투쟁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순간의 쾌락, 희망이나, 삶의 의미, 목표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운명을 받아들여 그 순간의 경험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반항은 삶의 가치를 부여한다. 한 생애의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반항은 그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
편협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인간의 지성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광경보다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장황하게 풀어낸 그의 인생 철학을 비유하는 우화 ‘시지프 신화’이야기로 책은 마무리된다. 시지프는 신들을 모욕한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러올리고 떨어지면 다시 굴러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신들이 이런 벌을 준 것은 무용하고 희망없는 노동보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움, 기쁨, 성취 등의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고된 노동만이 반복되는 삶은 마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카뮈는 여기에서 부조리를 마주한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말한다.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올리는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돌의 입자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 신조어 중에 ‘세상이 억까한다’ 라는 말이 있다. ‘억까’는 ‘억지로 까다’의 줄임말로 명분없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을 당했을 때 쓰는 말이다. 즉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일이 나를 적대시하듯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겪는 삶의 부조리가 신조어의 형태로도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듯 삶의 부조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신물나게 반복되는 일상일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는 연구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일수도, 불행하게 찾아온 병마나 사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인 알베르 카뮈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30살에 쓴 이 책을 시작으로 수 많은 명저를 남겨 명성을 얻지만 그는 46살에 기차를 타는 대신 친구 차에 동승했다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삶의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젊을 적부터 고민했던 만큼이나 억울하고 분해하기 보다는 덤덤하게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나의 경우에는 중요한 학위과정 막바지에 생기는 여러 개인적인 사정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환경들이 그러한 부조리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왜 하필 나한테,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할 게 아니라 왜 주어진 운명, 환경 속에서 시지프처럼 최선을 다해 부조리에 반항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내가 가져야할 태도일 것이다. 카뮈의 철학도 사실 정답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많은 철학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나는 그의 철학이 참 마음에 든다. 비단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면서 더한 부조리들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그러한 부조리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절망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반항하며 생겨나는 순간의 경험을 그저 축적해나가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산정을 향해 투쟁하는 시지프처럼, 어느 순간 무심결에 행복을 느끼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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