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룬샷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589회 작성일 23-11-10 02:25

본문


룬샷

사피 바칼 지음


'1907년, 가까운 거리조차 전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선을 타고 가다 보면 전기 신호가 약해지는데도 아무도 그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전자가 발견된 지 10년밖에 안 되던 때였다. 당시 AT&T 사의 CEO였던 베일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격한 아이디어들을 격리시켜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괴상한 것들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부서, 즉 미치광이 loon 들이 운영하는 룬샷 부서가 필요했다. 베일의 조직은 추후 벨 연구소로 이름을 바꿨고, 이곳에서 향후 50년간 트랜지스터, 태양전지, C언어를 개발했고 여덟 번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라는 작품이 최근 개봉하여 관람한 적이 있다. 이전 작품들을 너무 재밌게 봐서 이번 신작도 기대를 많이 했지만 큰 감동까지 받지는 못했다. 영화 내용의 전반부는 2차세계대전 상황에서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을 모아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실험에 성공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이고, 나머지 뒷부분은 나에게는 많이 생소했는데, 사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국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오펜하이머라는 한 인물의 사생활과 정치활동,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갈등, 충돌을 조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오펜하이머 본인을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피곤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유래 없던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과학사에는 길이남을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류를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 있는 끔찍한 전쟁무기를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그는 그 무게에 걸맞게 절절한 책임을 느끼며 남은 생을 살았고, 항상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짓눌려 살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다간 인물은 전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괄책임자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물리학자들을 미국에 초대한 것과 연구원 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프로젝트 내내 함께 모여지낼 수 있도록 마을을 짓는 것이었다. 그는 외골수 이미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정치활동과 사교모임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국가적인 기밀을 유지해야하는 만큼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는 환경 속에서 그는 종종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외부인물과 접촉하여 긴 시간을 보냈고, 이 때문에 그를 감시하려는 군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국가적인 사명이 걸려있는 미션인만큼 군총책임자는 오펜하이머의 능력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발언의 자유를 보장하고, 금전적인 지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첫째로, 내년도 R&D 예산 감축이 예고되어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R&D 말고도 여기저기 투자해야 할 분야가 한정된 자원에 비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그럴수록 국가 예산은 적재적소에 쓰여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간혹 낭비되는 사례가 종종 뉴스에 보도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실제로 지금 국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학위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매번 의도했던 것과 반대인 실험결과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둘째로, 평소 나는 개인적으로 공학이나 과학도 출신 인물들의 정치참여나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군사령관도 실은 MIT 공학도 출신이었고, 한 기업의 CEO로서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던 베일의 경우 평소 무시받고, 아이디어를 외면당했던 과학자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들의 연구자율성을 보장하고 비용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베일의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느낀 건,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온전히 과학자 한 사람의 몫이며 책임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외적인 요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번 R&D 예산 삭감사태를 보면서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공학도 출신의 경영인, 언론인, 정치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