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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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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498회 작성일 23-11-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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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보

현병호


  2019년 말 중국 우환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 (COVID19)는 전 세계에 전례 없는 큰 사회적 혼란과 공포를 야기했다. COVID19는 이전에 없던 뛰어난 전염성과 높은 치사율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일으켰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COVID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단위의 대대적인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바이러스에 못지않은 속도로 COVID19에 대한 여러 가지 음모론들도 빠르게 퍼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음모론은 빌 게이츠를 위수로 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트렸으며, 백신에는 불임을 유도하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음모론은 빠르게 전 세계에 확산되었고, 많은 사람이 백신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빌 게이츠 재단에 대한 음모론은 그 내용을 듣고 믿기에는 허무맹랑하고 근거가 없는 추측투성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였다. 생각해 보면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음모론과 괴담만 믿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었다. 1986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퍼진 평화의 댐 사건도 그렇고, 2008년 야당에 의해 퍼진 광우병 사태도 그렇고, 2017년 먹거리 X파일을 통해 퍼진 대왕 카스텔라 파동 때도 그랬다. 위 음모론들이 퍼진 시대와 퍼트린 근원지는 다르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성적인 판단과 전문가의 조언 없이 그저 감정적인 선동에 동요되어 괴담을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형태의 반지성주의의 예시라 볼 수 있다.


  지식인과 전문가에 대해 적대심과 반감을 품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담지 않으며, 그릇된 신념을 믿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사상을 반지성주의라고 부른다. 반지성주의는 현대에 와서 새로 생긴 개념이 아니다. 권력자들은 늘 자신이 다스리는 피지배층이 들고 일어나지 않도록 우민화와 함께 반지성주의를 활용하였다. 대부분의 인류가 교육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정보를 권력층에서 독점하였고 이에 대한 해석도 본인들의 입맛대로 하여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는 반지성주의가 사라지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작금의 현실은 이와 꽤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을 살고 있다.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매체를 이용하여 찾고자 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정보를 독점하고 본인들의 해석을 세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반지성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지식이 있는 사람은 많아도 지혜가 있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지식은 정보 그 자체이다. 정보를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지식이 많은 사람, 특히 넓은 분야에서 짧은 잡지식이 많은 사람은 넘쳐난다. 하지만 지혜는 지식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도덕적 스텐스를 가지고 선악을 구분하는 것, 정치적 안목을 가지고 정치인의 거짓말과 속내를 구분하는 것, 자연 현상을 관측하고 규칙적인 법칙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이다.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 우리는 과거에는 90분짜리 TV 드라마를 봤다가 최근부터 40분짜리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또 10분짜리 유튜브를 보다가 이제는 1분짜리 쇼츠와 릴스를 본다. 매체에 들어있는 정보의 밀도는 매일같이 늘어만 가는데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간도 같이 늘어나다 보니, 현대인이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끝없이 늘어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이 받아들이는 수많은 정보를 일일이 해석하고 고찰하기에는 너무 지치고 시간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정보 속에 담겨 있는 주관적인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가 생각하는 법을 놓치고 살아간다면 점점 유튜버가 말하는 대로, 인터넷 기사에서 전하는 그대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제한된 방식으로 지식을 분류하는 폐쇄적인 사회가 형성되기 쉽다. 애초에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본인들이 선별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정보의 극단화가 자주 일어난다. 또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무리를 찾아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 커뮤니티 안에서 반복적으로 치우쳐진 정보와 해석을 공유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오래 머물수록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극단적인 사상을 지극히 중립적이라 오해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모두 극단주의자로 치부하며 건설적인 대화와 생각의 전환을 거부하는 점이다.


  일례로 안아키(약 안 쓰고 아기 키우기)라는 이름의 네이버 카페가 있었다. 이들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모든 치료와 약을 거부하고 오직 자연주의 치료법을 통해 아이를 양육하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기존 병원에서 얻은 약들의 부작용을 공유하며 공포감을 확산하고, 자연주의를 통해 아이가 회복한 사례를 부풀려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들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말을 불신하고 안아키 회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아무리 이들의 양육법에 문제가 있다 지적해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안아키에서 공유된 민간요법과 자연주의 치료제는 많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였고, 결국 2017년 안아키 카페는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며 검찰 기소와 함께 운영자는 징역형, 카페는 폐쇄되었다.


  반지성주의보를 읽으면서 지성인이자 연구자로서 어떻게 반지성주의의 덫을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고, 나름의 해결책들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정보를 천천히 얻고 곱씹어 생각하여 내 지혜로 만드는 습관을 기르자.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느린 속도로 정보를 수용하였고, 천천히 머리에 들어온 정보를 정리해 보면서 나만의 지혜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유튜브 영상, 특히 1분 미만의 쇼츠 영상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정보가 머리에 노출되면 우리는 많은 지식을 얻어 지혜로워졌다고 착각하지만, 그중에 내가 스스로 해석해서 나만의 지혜로 바꾼 것은 하나도 없다. 정보를 체할 듯이 급하게 먹기보다 꼭꼭 씹어 생각하는 버릇을 키우자.


  두 번째로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자.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모든 정보는 근본적으로 틀린 정보일 수 있다. 그 어떤 공인이 말한 어떤 정보라 할지라도 사람이 전하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와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에는 인위적으로 가짜 정보를 섞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으니, 어떤 영상이든 책이든 논문이든 우리는 의심을 먼저하고 시간을 들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인터넷 뉴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특성 진영에 지지적인 매체만 구독하지 말고 좌우 균형을 맞춰 뉴스를 구독하자. 서로 대립하는 의견들을 듣다 보면, 보다 다각화된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소통하자. 반지성주의보의 저자는 과학계가 반지성주의에서 가장 자유로우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서로의 정보를 논문과 학회의 형태로 공유하고 비판을 수용하며 공통된 의견을 모으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과학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토론하기를 주저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고, 토론에 익숙하지 않아 싸움으로 번질까 두려워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건설적인 토론은 이기고 지는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승자와 패자 없이 자신이 가진 생각을 조리 있게 전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는 정보 교류의 현장이다. 건설적인 토론만큼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유연한 사고를 기르는 것은 없다. 우리 사회에도 여러 계층과 성별, 다른 종교와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마음 놓고 토론하는 자리가 생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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