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 존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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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구실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 새로운 신입생으로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처음 들어온 신입생은 개인 연구는 열심히 하지만, 회식도 나오지 않고, 지각이 잦으며, 심지어 (내 자신도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지만) 매 달 쓰는 독후감도 제때 내지 않기 일수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연구실의 보이지 않는 “선”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달 뒤 랩장이 되는) 나의 입장에서, 나는 이 신입생에게 회식도 좀 나오고, 미팅이 있으면 좀 일찍 나오고, 제발 독후감은 시간 맞춰서 올려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그 신입생을 절대로 말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오히려, 내가 이 신입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진지하게 들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자유론을 읽다 보면 이러한 구절이 책에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규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그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함으로써 진리는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밀은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원칙 (Harm principle)이 바로 자유론의 핵심이며, 이 원칙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을 때이다. 위에 사례에 이 논리를 대입하여 보자. 모든 사람이 회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술을 잘 못 마실 수도 있고, 오히려 그런 자리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으니. 어떤 사람은 아침에 잠이 많아 연구실에 늦게 출근하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또 일부는, 책을 읽는 것 보다는 유튜브로 영상을 보는 것을 즐길 수도 있다. 비록 내가 연구실의 책임자로써 (혹은, 곧 책임자가 될 입장에서) 특정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지라도,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할 권리, 강요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
저자는 사회적 다양성과 개인의 독창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위 “국룰”이라고 불리우는, 사회적 동조주의는 창의성과 개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해롭다고 경고한다. 이는 연구에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연구의 시작은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것으로부터 발전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전체 물리학계에서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그의 이론에도 일부 오류가 발견되었다. 내 경험도 비슷하다. 같이 일하는 학생들과 함께 어떠한 현상에 대해 토론을 펼치다 보면, 때때로 내 의견이 타당한 부분이 있고, 반대로 그들의 생각이 옳은 경우도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게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말하는 것 처럼, 개인의 의견 교환을 통해 사회적 진보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다시 원점에서 고민해보면, 남들 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새로운 신입생이 연구실의 문을 두드린다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따듯한 환영 인사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읽은 교훈을 떠올려, 내가 아무리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주장이라도, 그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보려 한다. 조금씩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왜 그랬는지를 고찰해 보는 것이, 그것이야 말로 성숙한 연구실 문화와, 더 나아가 사회와 학문의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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