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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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자식들 ”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著 「작은 미덕들」 를 읽고 -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수많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집에 있어도 예전처럼 편안하거나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서방 국가 중심의 체제에 대한 분열과 한계를 보였고,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타격하여 중동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를 거쳐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꾸려진 국제 사회는, 현대에 들어 중국의 부상과 이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세력화(化)로 점차 변모하고 있었다. 러시아도 그 ‘국가들’ 중 하나였고, 견고한 듯 보이지만 중간중간 큰 틈이 벌어진 서방의 울타리 사이로 자국의 숨통을 뚫고자 하는 명분과 함께 전쟁을 일으켰다. 두 번 다시 인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이 한 번 시작되고 나니, 생각보다 미국은 무관심했고 유럽은 나약했기에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터져버린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고 당사자가 아닌 이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외국인’ 들은 이런 국가와 국가의 관계와 우리나라에 끼칠 영향만을 생각한다. 진심으로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들’ 에 대해 마음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따스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갑기에 오직 자아(自我)와 피아(彼我)의 저울질을 통해 행복이라는 이기적인 쾌락만을 뒤쫓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의 가장 어두운 얼굴은 항상 옅은 미소 뒤에 가려졌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할 것이다. 애를 써도 소용없다.
다시는 평화로운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공부하고 우리의 삶을 평온하게 가꾸어가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다.
우리의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라.
더 이상 차분한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차분한 삶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비단 국가와 국가 간에 무기를 써 서로를 죽이고 국토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제 어디에나 있다. 국가가 개인을 향해 전쟁을 선포할 수 있고 개인도 국가를 향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집단과 개인도 다를 바 없다. 심지어는 오늘까지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내일은 당장 적이 되어 그 이웃이었던 자들을 어떻게 공격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온 사회에 다발적으로 퍼진 크고 작은 전쟁의 주체가 너와 내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점은, 끝없이 이어질 전쟁 속에서 점차 무던해질 우리가 혐오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는 세대로 남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자식들에게 평화는 없다. 여우와 늑대들은 자신들의 굴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자식은 머리를 둘 곳이 없다. 우리 세대는 인간들의 세대다. 여우와 늑대의 세대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곳엔가 머리를 두길 간절히 바라며 작고 따뜻하고 눅눅하지 않은 굴을 갖고 싶어 한다.
오늘도 인간의 자식이기에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작고 따뜻한 굴을 위해 한 줌의 흙을 퍼낸다. 그런 비관 속 유일한 희망은, 당장 굴을 얻을 수 있을 거란 허영심에 삽질을 멈출 나태함보단, 아득히 멀리 있음에도 삽질을 멈추지 않을 부지런함이 더 크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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