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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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니체
장재형
자포자기, N포, YOLO (YOU ONLY LIVE ONCE), 허무주의. 요즘 MZ 세대들에게 유행하는 허무와 향락을 대표하는 말들이다. 직장인들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 지치고, 반대로 취업준비생, 공시생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들 사이에서 현생을 떠나고 싶다거나,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잠시나마 취업준비를 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소자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도 있다보니 이렇게 사는 삶이 맞는 길인가 란 생각도 들긴 한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보고 있는데, 그러던 중 유튜브 알고리즘에 니체가 말했던 삶의 의미를 나타낸 영상을 보게 되었고, 꽤 인상이 깊게 남아 책도 같이 보게 되었다.
바야흐로 종교와 마법과 미신의 시대였던 중세 시대 이전 사람들은 신의 섭리에 따라 잘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직업도, 삶의 목적도 다 신이 정해줬다 생각하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신이 정해준 길만이 아닌 내 자신 속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 자체에 집중하자는 인본주의의 탄생이었다. 지금까지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곧 진리라고 믿어왔던 모든 믿음이 깨지고 인간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되고 자유를 얻게 되었으나, 그만큼 더 불안해져 갔다. 일이 잘 안될 때 신 탓을 하던 그리스인과 달리 ‘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며 자신들의 인생도 스스로 생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무한한 자유를 참지 못했고 세상엔 이유도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허무주의가 도래했다. 행복은 금세 사라지고 인생은 권태로 가득 차버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인간들은 허무를 느꼈다. 자신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혹은 자신들이 의지할 것이 사라진 인간들은 신을 대체할 것을 만들어냈는데, 그건 바로 타인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생 대부분을 뉴스와 SNS 등을 통해 얼마나 남이 잘 사는지 보며 살아왔다. 이의 연장선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SNS 팔로워 수, 재력, 직위와 권력 등으로 가치가 매겨졌다. 나 또한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행복한 모습에 보고 열등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신과는 다르게, 타인의 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변화무쌍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20세기에는 노벨상 효과라는 것이 이를 대표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후보에만 올랐다 떨어진 사람들보다 평균 수명이 몇 년 더 길었다고 한다. 변화무쌍한 시대에서 노벨상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심리적 방패였기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리에 속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욕망은 죽이고, 이웃에게 봉사함으로써 공동체를 형성하면 고통스러운 나를 잊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니체는 그건 일시적 진통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고통은 결국 우리의 내면에서 만들어지므로 그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야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다른 사람에게 속하고 싶고, 비교하고 싶은 나약한 노예의 마음을 버리고 나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초인이 되라 말한다. 남의 이야기만 듣느라 내면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 우리를 위해 조금의 고독을 즐겨보라고 조언했다.
소속감에 대한 욕망과 비교질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외롭다고, 불안하다고 나를 남에게 팽개쳐 두지 말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고독을 갖는 것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어찌보면 허무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길게는 100년 동안 살아가야 하는 이 인생은, 우리만의 큰 목적과 뜻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 의해 태어난 존재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렵고, 설령 찾고자 하더라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니체는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이 허무주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니체는 우리 세상을 ‘영원 회귀’ 사상으로 설명했다. 이 세상은 같은 것이 무한히 반복돼 새로울 것이 없어 허무하다고 말했다. 즉, 니체는 허무주의를 타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인생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라 했다. 니체가 보기에 우리 인간들은 계속 산 정상에 바위를 놓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포스처럼 신들에게 벌을 받아 산 위로 올려버리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내야 하듯이 말이다. 어찌보면 똑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니체는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순간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바위를 밀어내는 것의 의미는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인생의 의미도 목적도 없다면 그렇기에 오히려 나 스스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권태와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에 금욕주의자들은 아예 삶의 의지와 욕망을 버리는 것이 고통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니체는 그건 인생에 굴복하는 나약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인생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니체에 따르면 ‘노예’ 도덕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걸 창조할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정하고, 주인 도덕을 가진 사람들을 질투하면서 생기는 증오의 감정만을 느낄 뿐이다. 반대로, 삶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주인’ 도덕을 가진 사람들은 정작 자기 행복을 찾느라 노예들에겐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금 살았던 인생을 다시 똑같이 영원히 반복해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신의 저주 섞인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할 때, 우리의 삶 모든 순간을 포도주와 광란의 신, 디오니소스처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허무라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인간이, 오히려 그 모습을 즐기고 있노라면 얼마나 당당해 보이는가. 니체는 이것이 초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매 순간순간에 나에게 집중하고 즐기라”는 니체의 철학은 이런 사회에서, 정신건강과 우울증에 특효라고 불리는 명상의 본질과도 같다. 가끔 남과 지나치게 비교하고 비교질 당할수록 우리는 나약해질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춤을 추며 바위를 밀어올려야 한다. 나이를 얼마나 먹든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원의 중심에 서 있으니 말이다.
고대 한 소설에 등장하는 영생하는 요정들은 인간이 창조신에게 받은 ‘삶과 죽음’이라는 선물을 부러워 했다. 세상이 영원히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겪는 인생의 매 순간은 유한하기에 값지다. 니체는 그렇기에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이토록 달콤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허무함과 외로움, 방황, 절망과 좌절이라는 어둠이 드리울 때 우리가 가진 인생이라는 선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니체의 말을 되새기며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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