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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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카이 버드·마틴 셔원 -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전을 읽었다.
2023년 연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읽어보려고 구매해 두었던 책이었는데, 두께에 압도되어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펼쳐보았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논하기에는 전혀 두꺼운 책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 대상이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깊은 고뇌를 안겨주는 주제인 ‘원자 폭탄’의 개발을 이끈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방대한 분량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공산주의자들과 가까이 교류했던 지식인, 조국의 승리를 위해 가공할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 그리고 자신의 만든 무기의 파괴력 앞에서 고뇌하며, 이후 더 큰 파괴력을 가지는 무기의 개발을 반대하는 윤리자이자, 애처가이면서 호사가이기도 한.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영웅이면서도 위험인물로 의심받았고, 국가권력의 중심에 섰다가 같은 권력에 의해 밀려 추락하기도 하다, 또다시 누군가의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의 영웅으로 다시 추앙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떻게’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냐 보다, 그 이후 풍파에 시달리던 오펜하이머의 삶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 책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와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대공황과 파시즘의 확산, 스페인 내전과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는 좌파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주변 인물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공산당에 실제로 가입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이력이 훗날 그의 사상과 충성심을 의심하는 근거로 이용되어, 전쟁 중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과학자였기에 용인되었던 과거가, 전쟁이 끝나고 그가 핵무기 경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치명적인 약점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이 책은 평전이기에 오펜하이머 그의 시선으로 작성된 글이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관찰되어 본인의 실제 사상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그가 공산주의자 였다기보다는,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면서도 지식인으로서 국가의 모든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사람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정세 속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접하며 탐구했고, 그 과정에서 가까워진 이들 중 일부가 공산주의자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악하다거나 매국을 할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지식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자신과 같은 생각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검토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오펜하이머의 폭넓은 교류는 시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자신의 답을 찾으려 했던 지적 탐색의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냉전과 매카시즘의 시대에는 이러한 구분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누구와 교류했는지, 어떤 단체를 후원했는지, 과거에 어떤 발언을 했는지가 개인의 현재 사상과 충정심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오펜하이머가 다루던 분야가 핵무기라는 중대한 국가기밀과 직결되어 있었던 만큼, 그의 과거 행적과 주변 관계를 엄격하게 검증하는 일 자체는 불가피 했을 것이다.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개인의 선의나 애국심만을 믿고 모든 의혹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던 것은, 그에 대한 검증이 실제 보안 위험을 판단하기 위한 절차에 머물렀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미국의 승리를 위해 연구진들을 설득하며 원자폭탄 개발을 이끌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핵무기 경쟁이 초래할 파국을 우려했다. 이러한 행적을 보면 그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조국의 미래를 걱정했기 떄문에 국가의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인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과거 인간관계와 정치적 성향은 실제로 국가기밀을 유출했는지와 별개로, 그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오펜하이머 사건의 문제는 국가가 보안 검증을 실시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기보다, 정당한 검증이 정치적 불신과 보복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는 무시되던 그의 과거 행적이, 국가의 정책과 의견을 달리하자 위험의 증거로 소환되었다. 동일한 과거가 상황에 따라 허용되었다가 처벌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그에 대한 판단이 순수한 안보상의 우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그가 검증을 받아야 했느냐가 아니라, 그 검증의 기준이 일관되고 공정했느냐에 있다. 실제 기밀 유출이나 명백한 배신 행위보다 정치적 견해와 과거의 인간관계가 더 크게 다루어졌다면, 이는 보안 검증을 넘어 한 지식인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심판에 가까워진다.
국가안보를 위해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검증의 목적이 사실을 밝히고 위험을 판단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결론에 맞추어 누군가를 배제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절차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오펜하이머가 살았던 냉전 시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조사와 검증이 때로는 상대를 공격하고 공적 영역에서 밀어내기 위한 수단처럼 사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의 발언과 인간관계가 끝없이 소환되고, 사실관계보다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뤄질 때, 절차는 진실을 밝히기보다 낙인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이 평전을 통해, 검증의 필요성만큼이나 그 목적과 방식의 정당성을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조사하는 일이 불가피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은 일관된 기준과 충분한 근거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검증은 내일 또 다른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반복될 것이다. 과학과 정치가 충돌했던 오펜하이머의 시대를 돌아보며, 지금 우리 사회의 검증은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정해진 적을 향하고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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