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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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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334회 작성일 26-06-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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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로맨스의 서사가 그러하듯 오만과 편견은 어쩌면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보편적인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난한 신데렐라와 부유한 재벌 2세의 만남이라는 설정은, 익숙한 K-드라마의 공식처럼 우리에게 꽤나 기시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온도로 시작되어 각기 다른 속도로 깊어져 가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사이에서의 감정의 엇갈림 속에서, 우리는 문득 삶의 짙은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빚어내는 오해와 이해의 파동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자리한 두 원초적 마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비록 그 사유가 비단 사랑이라는 감정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상류층으로서 강한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다아시의 오만은 내가 근래에 마주했던 오만과는 사뭇 달랐다. 학위 과정에서 마주한 나의 오만은 거창한 자기 확신이라기보다, “이 정도면 됐다.”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스스로 그어버린 안일한 한계선에 가까웠다. 실험과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스스로 충분히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하고, 나름의 논리와 제법 결과를 갖추었다는 착각에 빠져 더 깊이 파고드는 일을 멈추고 싶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논문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에 내보인 나의 언어들이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질 수 있다는 깨달음과 서늘한 평가 과정을 거치며 뉘우칠 수 있었다. 날카로운 문장들과 질문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빈틈을 기어이 짚어내곤 했다. 자명하다고 여긴 전제들 위로 새로운 물음표가 던져졌고, 온전하고 충분하다고 여긴 설명에는 더 엄밀한 근거가 요구됐다. 오만으로 가득 차 있던 처음에는 그 시선과 지적들이 내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내 연구의 뼈대를 더욱 단단하게 여며주는 또 다른 빛줄기였음을 알게 됐다. 결국 오만은 무지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하게 묻고 의심해야 할 순간에 스스로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섣부른 안주에서 비롯되었다. 다아시가 자신의 세계와 잣대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듯, 나 역시 내 연구의 의미를 너무 쉽게 마침표를 찍으며 확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민낯인 편견은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에게는 누군가의 첫인상이 한 번 마음에 새겨지면, 그 잔상을 좀처럼 지워내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어떤 말투, 찰나의 어떤 행동, 어느 한순간의 태도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을 쉽게 단정 지었고, 그 섣부른 판단 위에 모든 기억을 덧씌우곤 했으니까. 마치 편견은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통로를 막으면서, 내 인식을 강화하는 필터로 작용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비좁은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며 내가 지어 놓은 편협한 해석의 틀 안에 그들을 가두고 있었다. 내가 확신한 타인의 모습은 그 사람의 아주 작은 단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마치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향한 차가운 첫인상의 감옥에 스스로 오래 붙들려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를 다시 볼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적이 많았다. 결국 편견이란 누군가의 진심을 오독하는 슬픈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이 더 넓게 이해할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었다.

 

 

 

 

 

 이러한 오만과 편견의 얼룩을 경험하며 걸어온 학위 과정은, 내게 있어 단순한 학위기의 수여를 의미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구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 이전에, 내가 가진 단단하게 굳어 있던 오만한 믿음과 좁은 시선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과정이었다. 책상 앞에서 “이 정도면 됐다.”라고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아직 묻지 않은 질문과 아직 듣지 않은 비판이 남아 있음을 되새겼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원래 저렇다.”라고 단정하고 싶을 때마다, 그 이면에는 감히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맥락과 시간이 존재함을 배웠다. 결국 긴 학위 과정은 지식을 쌓아 올리는 시간임과 동시에, 나의 오만함을 낮추고 편견을 덜어내는 수련의 시간이기도 했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짙은 오만과 편견의 안개를 지나 마침내 서로를 포용하는 사랑에 이르렀듯, 나 또한 연구와 사람을 오해하고 이해하는 담금질을 거치며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저 단순한 로맨스로 머물지 않는다. 한 권의 책으로 남는 학위를 넘어,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것은 단지 학문적인 미숙함만이 아니라, ‘오만과 편견’이라는 내 안의 가장 낡고 오래된 마음의 그림자였음을 이제는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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