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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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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윤서
댓글 0건 조회 275회 작성일 26-07-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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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사랑을 판단해 온 방식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고 큰 갈등이 없다면 비교적 안정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긴 연애를 해 왔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연애를 잘한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관계가 지속된 시간과 사랑의 깊이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과 그 관계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프롬은 사랑을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이 곁에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관계가 오랫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는 안도감 속에서 정작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을 미루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관계의 길이뿐 아니라 ‘밀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의 밀도는 단순히 얼마나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하고, 불편한 마음까지 드러내며,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알아 가는 과정이 관계의 밀도를 만든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서로의 삶과 감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관계는 깊어질 것이다. 반대로 오랫동안 곁에 있더라도 중요한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면 관계는 안정적으로 보이면서도 점차 비어 갈 수 있다.


 나는 가까운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싸움이나 감정적인 공격이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서운한 점을 말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하며, 그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 역시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부딪힌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함께 다루는 과정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에 상처받으며,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서로의 감정에 반응하고, 실망하거나 화를 내며,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관계의 감정적 밀도도 높아진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과정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만든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며, 갈등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친밀함을 만드는 방식이 다를 때 발생한다. 한 사람은 솔직한 충돌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충돌을 피함으로써 관계를 보호하려 한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다툼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 관계가 성숙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갈등이 없는 이유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화로운 관계와 밀도가 낮은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평화로운 관계의 침묵이 깊은 이해와 신뢰에서 나온 것이라면, 밀도가 낮은 관계의 침묵은 서로의 마음을 굳이 묻지 않음으로써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 대목에서 프롬이 말한 ‘이해’의 중요성이 크게 다가왔다.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좋은 모습뿐 아니라 불안과 서운함, 두려움 같은 감정까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실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반대로 나 역시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솔직한 생각을 숨긴다면 상대방도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관계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계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익숙함은 상대방을 잃고 싶지 않게 만들지만, 반드시 그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정과 애정이 남고, 관계가 사라진다면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그 관계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은 다르다.


 사랑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한 사람을 무조건 선택하는 일이라기보다, 자신이 내린 선택을 방치하지 않고 그 관계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일에 가깝다. 익숙함과 애정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유지되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반대로 처음의 설렘이 줄었다고 해서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전히 노력하고 싶은가에 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대신,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뒤에 숨어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한다. 사랑의 기술은 누군가를 붙잡는 기술도, 갈등 없이 관계를 유지하는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불편한 대화를 피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능력이다.


 결국 관계의 깊이는 함께한 시간보다 그 시간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관계를 흔들지 않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흔들릴 가능성을 감수하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을 밀도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사랑을 잘한다는 것이 관계를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이면서도, 침묵 속에 서로를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결국 사랑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실제 마음을 확인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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