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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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현관을 들여다보는 마음 —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책을 사놓고 한동안 펴지 않았다. 제목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안녕'이라는 말은 만날 때도 쓰고 헤어질 때도 쓴다. 그런데 '안녕이라 그랬어'라고 과거형으로 옮겨놓으면,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린다. 인사였는지 작별이었는지는 말한 사람도 모르고 들은 사람도 모르는 채로. 나는 그 어정쩡한 시제가 먼저 신경 쓰였다. 다 읽고 나니 그 어정쩡함이 이 책 전체의 온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문장은 이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흔한 말처럼 보이지만, 질문의 형태로 놓여 있어서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우리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너무 헐값에 쓴다. 나도 그랬다. 상대의 사정을 두어 줄 요약해 듣고는 다 이해했다는 얼굴을 했고, 그러고 나서 돌아서면 금방 잊었다. 특히 중학생인 아들 앞에서 그랬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저 나이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나도 열다섯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아는 건 내 열다섯이지 저 아이의 열다섯이 아니다. 같은 나이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해의 가장 큰 방해물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뒤늦게 생각했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개 누군가의 집에 들어간다. 초대받아 들어가고, 세를 얻어 들어가고, 잠시 머물다 나온다. 그런데 남의 공간에 몸을 들여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아주 조용하고 서늘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문턱을 넘는 순간 서로가 가진 것의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그 집의 조명, 식기, 벽에 걸린 것들이 말없이 사람을 재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장면에서는 등장인물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소설은 그걸 이렇게 정리한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에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인정과도, 가식이나 예의와도 상관없는 실존의 영역이라고. 이 대목에서 책을 덮고 잠깐 앉아 있었다. 나는 오래 회사를 다니면서 웃어야 할 자리에서 웃었고, 화가 나는 자리에서도 표정을 관리했다. 그걸 늘 내 비겁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것을 비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무대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일, 그 버팀 자체가 살아 있음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위로라기보다는 인정에 가까운 말이어서 더 믿음이 갔다.
가장 뜨끔했던 부분은 따로 있다. 실제로는 내게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매번 내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는 대목,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그저 삶의 활력소처럼 가볍게 비난할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여기려 애썼다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문장이 결정적이다.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많은 위안이 된다는 것. 나는 이 문장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었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을 오래 흉봐왔지만, 정작 나 역시 내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누군가의 흠을 찾아내 마음의 균형을 맞춰왔다. 그게 속물적인 태도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고 소설은 덧붙인다. 알면서도 그랬다는 그 한마디가, 나를 변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애란의 문장은 독자를 야단치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스스로를 야단칠 자리를 만들어놓고 비켜설 뿐이다.
나이 듦에 대한 시선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늙는 일의 좋은 점을 먼저 말한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한 뒤에 밀려오던 부끄러움 같은 것이 이제는 많이 줄었다고. 경험이 많다는 건 결국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라고. 여기까지는 그럴듯한 위안이다. 그런데 곧바로 소설은 그 위안을 걷어낸다.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은 나이와 함께 능숙해지지만 몸은 그 능숙함을 배신한다. 기태라는 인물이 자신은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안다고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장면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내 옷장을 떠올렸다. 아들은 아직 나보다 작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후드티가 아이 방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모자가 그렇고 이어폰이 그렇고, 얼마 전에는 아끼던 셔츠까지 슬쩍 넘어갔다. 몇 해 전만 해도 내 등에 업혀 자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나와 같은 옷을 입고 나가서 나보다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 웃기고 좋으면서도 신기한 느낌이었다. 나이 든다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 쪽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건 해석이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책의 끝에서 작가는 삶이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과 빤함과 통속과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떠오르는 것은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이라고.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고 여겼기에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결국 몸에 붙는다고.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내 감정이 너무 흔해서 부끄러웠다. 남들 다 겪는 일에 유난 떠는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그런데 흔하다는 것과 아프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이 소설집은 무언가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인물들은 대체로 이해받지 못한 채 각자의 문을 닫고 돌아선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난 뒤에 남는 감정은 냉소가 아니라 어떤 조심스러움이다. 앞으로 나는 남의 현관을 조금 덜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못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까지 알면서도 그렇게 적어둔다. 안녕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인사였는지 작별이었는지 몰랐던 순간들, 나에게도 몇 개쯤은 있다. 어쩌면 아이가 방문을 닫기 전에 던지는 짧은 인사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을 굳이 정리해주지 않고, 다만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봐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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