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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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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237회 작성일 26-07-2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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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 김정호著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를 읽고 -


 

 

동물을 돌보는 일은 동물들이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돌본다는 것은 개체별 특성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해주며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애를 써야하고, 기쁨은 잠깐이며, 오래 슬프고 종종 그립다.


 습하고 무더운 어느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교외의 어느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왈왈 짖어대는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개들이 맞이하는 어느 한 유기견 센터에 도착한다. 센터를 지키는 직원분의 요청에 맞추어 사료와 물을 나누어주고, 막사를 치우고, 꽝꽝 얼은 생수병을 여기저기 가져다 두고, 몇가지의 소소한 시설 보수를 돕고 나면 오후 산책을 가기 전, 잠시간 휴식을 취할 틈이 생긴다. 그러면 그제서야, 저 멀리 선풍기 앞에 누워 눈동자로만 사람들을 쫒아다니던 한 대형견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슬쩍 한번 쓰다듬어본다. 

 

 안락사가 없는 사설 센터. 그렇기에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 마리의 친구. 비교적 쉽게 입양이 되는 작고 어린 강아지들에 비해, 품종이 없는 대형견들은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된다. 비교적 오랜만에 방문했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에게 반가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 일 것이다.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또다른 한 마리는 작은 갈색 푸들. 순하고 귀여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장애가 있는 강아지는 입양을 가기 쉽지 않다. 오랜 번식견 생활로 탈장이 되어 용변관리가 되지 않는 가여운 푸들 한 마리는 그렇게 또다른 터줏대감으로 센터에 머물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센터 직원분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장애가 있는 푸들의 경우, 아직 수술도 많이 남고 나이도 많아, 그냥 센터에서 끝까지 잘 돌보려고 마음먹고 있다는 직원분의 다짐을 듣게 되었다. 대형견 친구도 아직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회화가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의 치유와 사회성 교육만 끝난다면 해외 입양이 될 수 있게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마리, 한 마리, 그냥 떠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입양된 이후의 삶까지 고려해서 돌보아주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존경심과 함께,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쪼개어 이렇게 진심을 다해 봉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 달에 기껏해야 세네번, 이제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유로 반기에 한번정도 겨우 찾아가는 내 행위는 좋게 표현해서 봉사활동이지,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개인을 위한 사심 채우기용 방문이다.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후, 한 생명을 맡아 돌볼 책임감과 용기는 없으면서도 작은 털 달린 생명체가 주던 따뜻함이 그리워 기웃거리는 모습이 비겁해보여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다. 

 반면, 센터를 지키는 직원들은, 다들 각자의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없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의 적은 보수를 받고,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개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사료와 물을 챙기고 배설물을 치우며, 구조한 개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입양 문의가 들어오면 단순히 데려가겠다는 말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지 살피고, 입양이 어려운 동물들에게는 언젠가 좋은 가족이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는 대신, 끝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까지 감당할 준비를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었던 존재의 삶에 기꺼이 뛰어들어 저토록 큰 책임을 감당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좋아한다는 감정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 앞에서는 쉽게 생기지만, 병들고 늙은 몸을 돌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치다꺼리를 하며, 기약없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일까지 당연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내가 직접 입양해 가족으로 맞이한 생명이라면, 물론 너무나 기꺼이 모든 모습을 사랑하고 감당할 수 있지만, 센터의 직원들이 돌보는 이들은 내가 선택한 한두 마리가 아니라, 아무런 연고도 없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생명이다. 오늘 한 마리를 구조해도 내일이면 또 다른 한 마리가 들어오고, 어렵게 한 마리를 입양 보내도 그 빈자리는 오래지 않아 다른 한 마리로 채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일. 무엇이 이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걸까. 

 

 그렇게, 누군가의 수고를 뒤로 하고 다시 대전에 내려오기 위해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들어간 서점에서 김정호 수의사의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관람 편의와 즐거움을 우선하던 전시 중심의 동물원을, 동물의 생태와 복지를 고려하는 야생동물의 보호와 치료, 재활공간으로 바꾸어온 청주동물원 수의사의 에세이 였다. 한때는 특이하고, 귀여운 동물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던 동물원이 이제는 늙고 아픈 동물을 치료하기도,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보호하며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기도 하는 공간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김정호 수의사의 글과, 보호소 직원들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귀엽지 않고, 늙고, 아프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사람도 살기 좋은 세상이라 믿는다. 언젠가는 동물원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어렵다면 동물원이 갈 곳 없는 동물들의 보호소가 되기를, 구조된 야생동물의 자연 복귀를 돕는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책 속에서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을 돌보아주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단순히 먹이고 치료하며 생명을 유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고, 저마다 다른 습성과 속도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며 그에 맞는 삶의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돌봄의 본질은 그 대상이 인간인지 동물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아이나 노인, 장애인, 혹은 주변의 누구든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면 각자의 방식으로 불편함과 필요를 드러낸다. 그 신호를 세심히 살피고 상대가 나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지 않는 것이 돌봄의 시작일 것이다. 

 

그렇게, 청주 동물원은 영구 장애를 얻은 야생동물을 데려오고,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된 나이든 동물을 구조하여 보호하기도 하며 야생동물들과 공존 가능한 시스템을 쌓아 나간다. 영구 장애를 얻은 야생동물들을 보호한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장애인 방문객, 나이 든 동물을 데려왔다는 기사에 멀리서 찾아오는 노령의 방문객들이 동물들을 보며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대하듯 바라보는 것을 보며 저자는 이러한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동물 뿐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사람 살기도 힘든데 무슨 동물까지 챙기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동물이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대답하기는 누구든 힘들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사람에게도 살기 좋은 이유는, 그 사회가 약하고 느리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대하는 방식에 있다. 늙거나 아프고, 장애가 있거나, 당장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존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라면 사람 역시 늙고 병들거나 도움이 필요해지는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동물의 생태와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는 아이와 노인,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각자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결국 어떤 생명의 불편함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일은 모두를 위한 삶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김정호 수의사가 꿈꾸는 동물원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구조된 야생동물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회복을 돕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동물에게는 남은 생을 안전하게 보낼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다. 그 상상의 끝에 있는 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동물들이 자신의 습성에 따라 먹고 움직이며, 아프면 치료받고, 두려움 없이 쉴 수 있는 평범한 하루이다.

센터의 작은 푸들과 대형견에게 필요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선택받아 특별한 삶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아픈 몸을 치료받고, 다시 버려질 걱정 없이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 좋은 가족을 만난다면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익숙한 사람들의 돌봄 속에서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센터 직원들이 입양 이후의 삶까지 고민하고,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할 가능성마저 감당하는 이유도 그 평범한 하루를 지켜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타 종(種)의 관계를 넘어, 그냥 생명 대 생명이 서로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본다.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 다른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때로는 마치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충돌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공존은 누군가를 나의 기준에 맞게 바꾸는 데서 시작하지는 않는 듯하다. 모든 존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려 시도하고, 각자의 모습을 존중하며 조금씩 자리를 내어줄 수는 있다. 인간과 동물,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들이 쌓여, 우리 모두가 편안한 공존이 가능한 사회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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