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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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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2,179회 작성일 23-11-1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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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우리 몸에는 너무 많은 상흔이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며, 아무리 추모한다 할지라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씩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상처는 결코 얕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고,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시간만이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관대함을 보인다.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라며.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에 치여서 일까? 충분한 애도할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서 일까? 우리의 뼈저린 기억은 평범한 일상으로 회복되기 어려워 보이며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추모는 쳇바퀴 굴러가듯 의미를 상실한 채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아 보인다.

 

 

“잊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그러나 이내 견딜 수 없이 차가워져 나는 손을 털었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평범한 일상을 마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망각이라는 핑계로, 역사를 흘러버린 세월로 치부하며 소리 없이 묻혀버린 과거를 방치하였다. 나 역시 그 참혹을 마주하게 되면 일상이 어두워지거나 그 감정이 나를 소용돌이처럼 집어삼키며 기운을 메말라 가게 했기에, 그들이 겪은 고통이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회피하려 했다. 그러면서 고통 속에 벗어나지 못하고 끔찍했던 역사의 한복 판에 지금까지도 고군분투하며 작별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과거에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사람이라며 폄하 하거나, 적절한 보상이라며 혹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며 알량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가해자와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언제 상처가 가능한 지를 말이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우리가 슬픔에 젖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화제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꺼리며 상대방이 나를 상이하게 생각하는 것을 걱정해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를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바다 깊은 곳으로 이끌고 내려간다.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슬픔만이 남아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마치 거대한 망각의 바다가 밀려와 우리의 기억을 송두리째 휩쓸어 가려는 것으로부터 막음으로써 직면하기 어려운 순간이라도 우리는 그 역사와 함부로 작별하지 말아야 함을 전달하듯 말이다. 그리고 침묵을 강요받아 혼잣말로 속삭이는 세월을 보내야 했던 그들을 둘러싼 광대한 바다, 삶에 환한 햇살이 들게 해준다.



 완독을 하기까지 유난히 힘들었던 것을 되돌아보면 감정은 분명 전이되며 아무리 공통적으로 겹쳐지는 부분이 없다 한들 그들의 고군분투하였던 삶에 녹아들 수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한 역사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광기에 고립된 이들의 막막함과 참혹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같은 시공을 공유하며 우리 주변에 있을 아픈 미망을 가진 이들에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 허물을 벗고 바다로 뛰어드는 것, 모르쇠 침묵이 아닌 그들만이 짊어진 역사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300쪽 내외의 이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이라면 아무리 다시 펼쳐보기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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